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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꿈의 색을 칠하는 날

그리움 끝에 남은 말

by 시니어더크


2024.12.19 (목) 맑음


사랑하는 정숙 씨,

시간이 참 빠르네요.

매일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도 마치 어제도 오늘도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집안일만 하고 지내는데도,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져요.

이런 나날이 계속되다 보면 세월만 흘러가는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무언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어요.

추위에 몸도 마음도 웅크려지는 날이었죠.

하루 동안 보험사와 은행을 다녀오고는 집에 머물렀어요.

지금은 밤 11시,

건조기에서 빨래를 돌리며 편지를 씁니다.

빨래가 다 마르면 접어두고 잠자야겠죠.

이런 평범한 일상이 쌓이는 요즘입니다.



낮에는 아들이 기타를 손질하고 있더군요.

기존 기타의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칠을 모두 벗겨내고

새롭게 파란색으로 다시 칠하고 싶다고 했어요.

파란색에 녹색이 섞인 자신만의 특별한 색깔을 만들고 싶다고 했죠.

처음에는 "굳이 이렇게 힘들게 직접 작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아들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색깔로 완성된 기타를 사려면 가격이 억 단위로 올라요."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직접 색칠할 수 있는 미완성 기타를 고른 것도,

그걸 손수 다듬고 새롭게 완성해 가는 것도

그의 열정과 노력이 묻어나더군요.

저렴하게 산 그라인더와 사포를 들고 꼼꼼히 칠을 벗겨내는 모습이,

그의 손끝에서 꿈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정숙 씨,

아들을 보며 음악이라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음악가의 길은 많은 시간과 노력은 물론,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길이더군요.

어렸을 적 우리는 그런 이유로 예체능을 피하게 하고 싶었잖아요.

그런데 아들은 끝까지 음악의 길을 고집했고,

결국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죠.



기억나세요?

딸아이도 초등학생 때부터 발레를 배우고 싶어 했었잖아요.

하지만 형편상 중도에 포기하게 했던 그 일을,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며 취미로라도 이어가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하고 싶었을지 느껴져서 미안함이 밀려옵니다.

당신도 그때 딸아이를 위해 울며 가슴 아파했었죠.


그런데요, 우리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어요.

딸은 취미로 발레를 다시 시작했고,

아들은 자신이 만든 곡으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앨범을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지,

요즘도 아들은 종종 눈물을 보이곤 합니다.



이제 아들의 기타에 파란색이 입혀질 날이 곧 올 거예요.

그리고 그 기타로 만든 곡이 세상에 울려 퍼질 날도 오겠죠.

그날이 오면 지금의 모든 고생이 보상받고,

그의 꿈이 현실이 될 겁니다.

그날이 오면 당신도 하늘에서 누구보다 큰 박수를 쳐줄 거라 믿어요.


정숙 씨,

오늘은 유독 아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하지만 그가 얼마나 노력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당신도 알아주었으면 해요.

내일은 더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고 다시 당신에게 편지를 쓸게요.

오늘 밤도 당신이 있는 그곳이 따뜻하고 평안하길 바랍니다.


안녕히,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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