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속에 남은 그리움
2024.12.20 (금) 흐림/눈
정숙 씨,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포근한 날씨였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창밖엔 하얀 눈이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내일 새벽엔 더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찬바람과 함께 혹독한 한파가 찾아온다고 하네요.
집 안은 따뜻합니다.
하지만 밖은 얼마나 추울까요?
차디찬 외부에서 이 눈을 마주할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옵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문득 당신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만약 정말 여행을 간 것이라면 언젠가 돌아올 날이 있겠죠.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올 테고,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네요.
이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잔혹한지, 이제야 온몸으로 느낍니다.
당신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으니까요.
어제는 아들이 생홍어회를 사 왔습니다.
그런데 그냥 먹기엔 맛이 이상하다며 내버려 두자고 했죠.
오늘 아침, 그 홍어를 손질해 아들이 좋아하는 홍어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맛을 본 아들은 사 먹는 것과 똑같다며 기뻐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당신과 함께 의정부 제일시장에 갔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장에 가면 꼭 홍어회를 사 오곤 했죠.
아들이 좋아하니 꼭 사다 주자고 말하던 당신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오늘 아들이 홍어회를 맛보며 “엄마가 사다 주던 그 맛”이라고 하던 말에,
그리움이 밀려와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또 다른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추석에 송편을 만들고 남은 동부를 냉동실에 넣어 두었었지요.
당신에게 더 맛있는 송편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남겨 두었던 재료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동부를 꺼내 혼자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만들던 송편은 참 맛있었는데,
오늘 만든 송편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맛이 나지 않더군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신과 함께할 때의 온기와 웃음,
그 모든 감정이 맛의 일부였던 것 같습니다.
혀로만 느껴지는 것이 맛이 아니라,
마음과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없는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밖엔 여전히 눈이 내립니다.
내일 아침이면 차 위에 눈이 가득 쌓여 있을 테지요.
눈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하겠지만,
마음 한편엔 닷새 후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얻습니다.
그날 당신을 만나러 갈 예정입니다.
그날도 이렇게 눈이 내릴까요?
아니면 차갑게 얼어붙은 대지가 맑게 빛날까요?
어떤 모습이라도 좋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당신을 향한 마음으로 가득할 테니까요.
정숙 씨,
그곳에서도 부디 따뜻한 미소를 짓고 계시길 바랍니다.
추운 겨울밤, 당신을 그리워하며 보내는 이 편지가 닿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늘 당신을 사랑했던 당신의 남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