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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새하얀 눈이 세상을 덮은 날

눈 내린 날, 당신을 향한 그리움

by 시니어더크


2024.12.21 (토) 맑음


사랑하는 정숙 씨,

오늘 아침,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내린 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어요.
빗자루를 들고 조심스레 내려가,

차 위에 쌓인 눈부터 쓸어냈습니다.
그대로 두면 얼어붙을까 봐 걱정이 됐거든요.

기온은 계속 영하를 맴돌고, 차가운 공기에 마음까지

시려오는 느낌입니다.

내일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고 하네요.
조금 전엔 한파주의보 문자가 도착했어요.





겨울이라 춥겠지만, 저는 여전히 따뜻한 게 좋아요.

당신도 그랬었죠.

우리는 늘 겨울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어요.

따사로운 햇살, 꽃피는 날씨 아래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이죠.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춥지 않겠지요?

포근한 바람이 불고, 언제나 온화한 날씨일 거라 믿습니다.





내일은 교회에 가야 해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주일로 드려요. 당신과 함께

성탄절 예배를 드리던 때가 떠오릅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찬송가를 부르던 그 순간들이 그립네요.

당신과 함께라면 추운 겨울도 따스하게 느껴졌는데 말이에요.





아들은 요 며칠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힘들어하고 있어요.

병원에 가보라고 해도 고집을 피우며

약국 약으로만 버티고 있네요.

당신이라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병원에 데려갔겠죠?

딸은 에스더와 함께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발레 공연을 보고 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둘이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참 고맙고 뿌듯해요.

엄마가 없는 지금, 둘이 서로를 챙기며 지내는 모습에서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마음이 느껴져요.

딸은 특히 당신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답니다.





오늘 낮에는 타이타닉 영화를 다시 봤어요.

예전에도 여러 번 봤던 영화인데, 이번엔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거대한 배와 그 안에서 죽음과 맞서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참 무거워졌어요.

그들의 공포와 절망이 어찌나 생생히 느껴지던지요.

특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발버둥 치던 장면이 당신의 마지막 순간과

겹쳐 보여서 결국 참지 못하고 통곡하고 말았어요.

혼자 있는 집에서 한참을 울었답니다.



정숙 씨, 정말 많이 보고 싶어요. 당신이 아프든, 아프지 않든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삶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이별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덜할까요?

아니면 이 마음 그대로 당신을 그리며 살아가야 할까요?





눈물을 다 쏟고 난 후에는 쿠키를 데리고 공원을 다녀왔어요.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공원에서

쿠키는 마냥 신이 나서 뛰어다니더군요.

그런데 그곳에서도 당신의 흔적이 떠올랐어요.

공원의 벤치, 산책로, 모든 곳에 당신과의 추억이 남아 있으니

당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어디를 가든 당신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곳이 없어요.



정숙 씨, 이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네요.

당신이 없는 삶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해 줘요.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어요.

이 밤도 편히 지내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사랑을 담아,

당신의 남편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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