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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성탄주일에 당신을 생각하며

성탄의 노래 속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by 시니어더크


2024.12.22 (일) 맑음


사랑하는 정숙 씨,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은 차갑지만,

따스한 햇살이 당신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워지는 아침이었어요.





주일 아침, 조용히 부엌에 서서 밥을 지었습니다.

당신과 함께였더라면 작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겁게 식사를 준비했을 텐데,

이제는 그저 혼자 묵묵히 해야 하는 일상이 되었네요.

김칫국에는 콩나물을 조금 넣어봤어요.

감기로 고생하는 아들이 따뜻한 국물 한 그릇으로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요.

된장찌개도 끓이고 밥상을 차려두고 설거지를 끝냈습니다.



이후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80번 버스를 타고 교회에 가야 하거든요.

정류장에서 기다리며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에 살 때,

당신과 함께 교회에 다니며 나누었던 대화들,

그리고 예배 후 함께 먹던 따뜻한 교회국밥 한 그릇까지도요.





오늘은 성탄주일이라 예배가 더욱 특별했습니다.

성가대가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했는데,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어요.

당신도 기억나죠? 서울 교회의 시온성가대에서

소프라노로 찬양하던 당신의 모습이요.

당신의 맑고 고운 목소리는 찬양으로 가득한 성탄 예배를 더욱 빛냈었지요.

오늘 들었던 찬송가가 당신의 목소리로 다시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예배 후엔 남선교회 총회가 있었습니다. 참석 인원이 스무 명뿐이었지만,

마음을 다해 임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를 보며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서울에서 남선교회 회장을 맡아 힘겹게 회원들을 독려하던 때 말이죠.

전화를 돌리고 정성을 다했지만, 정작 모임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도요.

당신은 어땠나요? 여선교회 회장을 맡았을 때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신은 그때마다 웃으며 “그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말하며

품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총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감기약이 떨어져 약국에 들렀습니다.

종합감기약과 몸살약을 사 들고 돌아와 보니 아들이 먹을 아침을 챙겼지만,

김칫국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였습니다.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이 있었다면, 이런 순간엔 뭐라고 말했을까?”라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어요.

당신은 그럴 때 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상황을 풀어주곤 했잖아요.





딸은 된장찌개로 밥을 먹고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무엇을 해줄까 고민 중입니다.

당신이 있었다면 감기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었을 텐데,

이제는 내가 당신 역할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정숙 씨,

오늘은 하루 종일 당신이 떠올랐어요.

성탄의 기쁨이 가득했던 예배 시간, 성가대의 칸타타가 울려 퍼지던 그 순간,

그리고 당신의 찬양하는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겠지요.

당신의 맑은 목소리가 그곳에서 더 밝게 빛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오늘 밤도 당신을 떠올리며 잠이 들겠습니다.

이 추운 겨울이 끝나갈 즈음엔,

마음의 빈자리도 조금은 따뜻해질까요?

내일은 또 당신에게 편지를 써볼게요.

잘 지내요, 정숙 씨.


당신을 그리워하며,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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