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냄새처럼 떠오른 그리움
2024.12.23 (월) 맑음
정숙 씨,
겨울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월요일이 찾아왔어요.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공기가 얼마나 차가운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더군요.
우리 집이 있는 경기북부와 강원도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소식도 들렸어요.
낮 기온이 영상 5 도라지만,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칠 때면
그보다 훨씬 춥게 느껴집니다.
이런 날엔 당신과 함께 자주 끓여 먹던 따뜻한 누룽지가 생각납니다.
냄비 위로 피어오르던 고소한 향기,
그리고 그 한 그릇을 함께 나누던 순간이 그리워지네요.
아들은 여전히 감기로 고생하고 있어요.
오늘도 힘겹게 일어나 약을 먹고 학원으로 향했답니다.
어지럽다고 했는데 병원에 가보라는 말에도 “괜찮다”며
고집을 부리더군요.
약국에서 산 감기약으로 버티는 중이라 그런지
쉽게 낫지 않는 모양이에요.
밤늦게 개인레슨까지 가르치고 돌아올 텐데,
그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됩니다.
당신이라면 어땠을까요?
오늘 하루는 달력을 만들 사진을 고르며 보냈어요.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꺼내 보니
몇 년간 찍은 사진이 3,000장이 넘더군요.
그중 스페인과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 특히 많았어요.
일본 여행 때는 카메라 화질이 별로라
쓸만한 사진이 적었지만,
당신의 미소가 담긴 몇 장을 찾아냈어요.
당신의 웃음은 언제나 따뜻하고 생기 넘쳤죠.
그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참 많이도 여행 다녔구나 싶었어요.
아프기 전은 물론, 힘든 몸을 이끌고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떠났잖아요.
당신이 여행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힘든 순간에도 “여행이 행복의 원천”이라며 미소 지었던
당신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아이들이 내년에 일본 여행을 가자고 해요.
당신이 좋아했던 그곳이니 아이들과 함께 가볼까 싶다가도,
당신 없는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일본 특유의 조용한 거리,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온천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늘 일본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며 행복해했지요.
그곳에서 당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당신이 그리워서
한 걸음도 제대로 내딛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고 빨래도 돌렸지만,
요즘은 집안일조차 손에 잘 잡히질 않아요.
마음이 느슨해지고 무기력한 기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딘가 나가서 일을 해야
정신적으로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는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냥 보내고,
새해가 되면 조금 더 부지런해지기로 결심했어요.
당신이라면 내게 뭐라고 했을까요?
“힘내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며 웃어주었겠죠.
이 편지를 쓰고 나니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시계는 벌써 11시가 넘어가는데, 아들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자정을 넘겨서야 돌아오겠죠.
문득, 아들이 돌아올 때쯤 당신이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게 됩니다.
그를 안아주며 “수고했어”라고 따뜻하게 말하던 당신.
그런 당신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해 더 그립습니다.
잠시 후엔 양주시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아들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앞으로의 계획도 차근차근 생각해 보려 해요.
정숙 씨,
오늘 밤도 잘 지내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안녕,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