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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당신이 없는 첫 크리스마스이브

케이크 위의 초, 그리움 하나

by 시니어더크


2024.12.24 (화) 맑음


정숙 씨,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예요.

우리가 함께한 수많은 크리스마스가 떠오릅니다. 매년 이맘때면

우리 네 식구가 둘러앉아 작은 파티를 열곤 했죠.

테이블 위에는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들이 올라왔고,

와인잔을 나란히 채우며 서로의 웃음소리를 나누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당신은 건강 때문에 와인 대신 물을 마셨지만,

손에 든 와인잔과 미소로 가득한 표정은 늘 우리를 기쁘게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당신 없는 이 날을 맞이하니

모든 것이 낯설고 허전하기만 하네요.





이번에는 와인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지난번 마트에서 할인 중인 포도 두 상자를 사 와서 정성껏 준비했죠.

처음 시도한 일이라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어요.

너무 달지도 않고 깊고 풍부한 맛이 나더라고요.


고급 와인처럼 느껴졌지만, 정작 당신과 함께 마실 수 없다는 생각에

와인잔을 들지 못했어요.

당신과 나눈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네요.







아들 덕분에 오늘 저녁은 뜻밖의 잔치가 되었어요.

방어 반 마리를 주문해서 몸통은 회로, 머리와 뼈는 매운탕으로 준비했답니다.

아들이 직접 회를 뜨는 모습이 서툴지만 정겹더군요.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따뜻한 미소로 칭찬했을 텐데 말이죠.


딸이 사 온 화려한 케이크와 에스더가 가져온 딸기도

후식으로 곁들였어요.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이크를 입안에 넣으니,

순간 당신 생각이 났어요.

“이 케이크, 당신도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요.












오늘은 에스더가 함께했어요.

당신을 대신해 이 빈자리를 채워준 그 아이가 참 고마웠어요.

에스더는 우리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쓸쓸히 혼자 이브의 밤을 보냈겠죠.

하지만 아무리 곁에 누군가 있어도,

당신의 빈자리는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당신의 부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그리움으로 다가오더군요.





저녁이 끝난 뒤, 설거지는 내일로 미뤄두고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모든 순간마다 당신이 떠오르네요. 당신과 함께 웃고, 함께 걱정하고,

함께 살아온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야 더 절실히 알게 되었어요.







내일은 아들과 딸과 함께 당신의 분신이 있는 곳으로 갈 예정이에요.

당신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음을,

당신의 사랑이 여전히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러요.

당신이 떠난 뒤에도 당신의 흔적과 사랑은

우리 삶에 스며들어 계속 함께하고 있어요.







정숙 씨, 당신 없는 첫 크리스마스이브를 이렇게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라지만,

내게는 당신과의 모든 날이 축복이었어요.

비록 당신의 손을 다시 잡을 순 없지만,

당신의 사랑은 내 삶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 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정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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