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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정숙 씨, 당신을 그리워하며 맞이하는 겨울

알함브라의 햇살, 거실의 미소

by 시니어더크


2024.12.18 (수) 맑음


정숙 씨,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게 느껴지네요.

아침 8시, 날씨를 확인해 보니 영하 8도랍니다.

이제 정말 겨울입니다. 집 안 온도를 보니 영상 20도였는데,

평소에는 춥지 않다고 느낄 기온이

오늘은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난방을 켰습니다.

온도를 영상 22도로 맞추자 금세 따뜻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당신이 옆에 있었다면 난방을 켰을까요?

아니요, 아마 “가스요금 많이 나온다”며 틀지 말라고 했겠죠.

당신은 늘 검소하고 절약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불필요한 건 절대 쓰지 않고,

작은 것 하나까지 아끼던 당신.

그런 당신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봅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잠시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조금만 켜겠습니다.

괜찮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따뜻한 방 안에 앉아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당신이 계신 그곳은 이곳보다 훨씬 더 추울 테니까요.

화강석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뎌야 하니

얼마나 더 춥고 외로울까 생각하니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이제 딱 일주일 남았습니다.

그날은 당신이 좋아하던 예쁜 꽃다발을 사서 당신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조화가 아닌 생화로요.

물론 차가운 겨울바람에 금세 시들어버리겠지만,

잠시라도 그 향기로운 꽃내음을 느낄 수 있도록 곁에 두고 싶습니다.

꽃다발을 전해 드리고,

따뜻한 수건으로 화강석을 닦아줄게요.

추운 겨울에도 당신 곁만은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드디어 당신의 사진을 패널로 만들어

거실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걸었거든요.

당신도 기억나죠?

스페인의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벤치에 앉아 활짝 웃고 있던 당신의 모습.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 몰라요.

그때의 당신을 담은 사진을 매일 보며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고 싶었습니다.


사진이 걸리고 나니 집 안이 조금 더 따뜻해진 느낌입니다.

당신의 미소가 마치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아서요.

이제 집 안을 오갈 때마다 당신의 사진을 보며,

당신의 따뜻한 기억을 품게 될 겁니다.

당신은 그 사진 속에서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거예요.


정숙 씨, 그날 알람브라 궁전 정원의 당신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햇살을 받은 당신의 웃음은 그날의 정원을 가득 채웠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었지요.

그 사진은 아마도 내가 여기 있는 한 항상 이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당신이 떠난 후로 이 겨울은 참 길게 느껴집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춥지 않았을 계절도,

당신 없이 홀로 보내려니 더 깊고 차갑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당신의 사진을 보며,

당신의 따뜻한 추억 속에서 살아갑니다.


크리스마스 날 당신을 만나러 갈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는 늘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겁니다.

그날처럼 웃는 당신의 모습을 내 가슴 깊이 간직하며.


당신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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