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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하루를 당신께 고백합니다.

2025.6.2 (월)

by 시니어더크


어떤 하루는, 이유도 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건만,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가슴 한편이 묵직해 왔다.
생각들은 한 자리에 머물며 맴돌았고,
발끝은 자꾸만 멈춰 섰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태양은 분명 떠 있었지만, 햇살은 드물었고
창밖에는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바람조차 없는 가라앉은 하늘 아래,
이따금 아주 여린 빗방울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조용히 떨어졌다.


그 빗방울마저도
내 마음을 대신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날이면 괜스레 세상이
나를 천천히 외면하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멀게 느껴지고,
익숙한 것들조차 낯설게 다가오며,
'내일'이란 단어조차 불확실하게 흐려진다.


며칠 전, 토요일 오후였다.
셋째 형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며칠 안에 검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 했지만
오늘 들은 말은 "아직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일주일이 더 소요될 수 있다는 병원 측의 말에
내 마음은 또다시 무거워졌다.


그렇게도 정정하시던 분이 병상에 누워 계시다니,
쉽게 믿기지 않았다.
여러 검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병명을 찾지 못했다는 말은
내 속 불안을 더 짙고 깊게 물들였다.


셋째 형님은 내게 늘 보호자 같은 존재였다.
아내의 긴 병상 생활 속에서
내가 지쳐 무너지려 할 때면
묵묵히 등을 토닥여 주던 분이었다.


말은 아꼈지만,
그 침묵엔 언제나 따뜻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


그런 분이 지금은 희뿌연 병실에 누워 계신다.
그 모습을 떠올리자
정숙 씨의 마지막 병실 풍경이 겹쳐 지나갔다.


조용히 고통을 견디며
당신이 흘리던 눈물 한 방울,
그 속에 담긴 두려움과 슬픔이
마치 오늘 내 심장처럼 절절하게 되살아났다.


나는 두려웠다.
또다시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될까 봐.
그 두려움 앞에서
내 마음은 고요히 무너져 내렸다.


그런 내면과는 다르게 밖은 무척 시끄러웠다.
대통령 선거 유세 마지막 날이라
확성기를 단 차량들이 골목을 오갔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익숙한 선거 문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말인데,
오늘은 그 소리마저 거슬렸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세상의 소란은 더 크게 내면을 파고든다.
결국 나는 라디오를 꺼버렸다.
그 어떤 말도, 음악도, 설명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있고 싶었다.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천천히 나 자신을 붙들고 싶었다.


점심은 거르고,
텅 빈 식탁에 나 홀로 앉아
겨우 따뜻한 밥 한 공기를 차려 보았다.


그 자리에 늘 앉아 있던 정숙 씨가 떠올랐다.
몸이 아파도
늘 반찬 하나를 더 챙기려 애쓰던 사람.
자기 밥보다 내 그릇을 먼저 살피던 그 손길.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그리웠다.


그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지금은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지만
이제는 누구의 온기도 없다.


불안한 날에는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위로는
거창한 말도, 큰 행동도 아니다.


그저,
따뜻한 눈빛 하나.
말없이 옆자리를 지켜주는 한 사람.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그런 사람을
거의 사십 년 가까이 곁에 두고 살았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그 사람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실감한다.


오늘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한다.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천천히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 위에,
당신의 손길 하나를 다시 떠올린다.
그 손길은 늘 말없이 내 등을 감싸주곤 했다.
지금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마음을 다독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조금 더 맑기를.
바람은 좀 더 부드럽게 불고,
하늘은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그렇게 조용히 바라며,
오늘의 불안도
이 밤 속에 함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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