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1 (일)
6월의 초하루.
벌써 올해의 절반 가까이가 흘러갔다.
계절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나는 그 흐름을 한 걸음씩 따라 걷고 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를 줄 누가 알았을까.
당신 없이 맞이하는 이 봄과 여름이,
어느덧 내 안의 시간마저 데려가고 있다.
꽃다운 시절에 당신을 만났었다.
우리는 인생을 논했고,
서로의 하루에 꿈을 얹었다.
그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나는 칠순의 노인이 되었다.
믿기지 않지만,
뒤에서 무섭게 달려오는 삼십 대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아이들이 무얼 향해 그렇게 달려가는지,
나는 문득 두려워진다.
길의 끝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뛰는 걸음이,
혹시라도 어딘가를 놓치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은 오이무침을 무치고
열무물김치를 담갔다.
냉장고 속엔 김장김치 하나가 전부였다.
한여름 앞에서, 김치 하나는 너무 외로워 보였다.
가장 쉬운 반찬부터 시작했다.
마트에서 사 온 열무 한 단을 깨끗이 손질해
유튜브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 보았다.
조회 수가 수십만 회라 믿음이 갔다.
영상 속 주부는 참외를 갈아 넣으라 했다.
설탕이 필요 없단다.
배 대신 참외.
처음 들어보는 조합이었지만
집에 마침 참외가 하나 있어 그대로 넣었다.
상온에서 하루 익힌 후
냉장고에 넣어 차게 먹으면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날 거라 기대하며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었다.
문제는 저녁 무렵에 생겼다.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갔는데
무심코 “참외 넣은 시원한 물김치 만들어 놨어” 하자
아들이 깜짝 놀라는 게 아닌가.
“참외 넣었다고요?”
“응, 하나 남아서 갈아 넣었어.”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아빠, 나 참외 먹으면 설사해요.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바로 탈 나요.”
참외가 들어간 김치는
아들에게 독이 된단다.
열무 한 단 가득 담아 만든 물김치가
그 말 한마디로 의미를 잃었다.
이제 그 김치는
나와 딸이 다 먹어야 할 운명이다.
반찬이 모자라니
참외 없이 다시 한 단을 담가야겠다.
참외는 내게 특별한 과일이다.
어린 시절,
시골 과수원집 원두막에 올라
양동이에 담긴 찬물 속에서
참외와 수박을 건져 먹던 그 기억.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꿈꿨다.
어른이 되면
얼음물 가득한 큰 양동이에
참외를 잔뜩 담아
배 터지도록 먹겠노라고.
어른이 되었고,
냉장고라는 멋진 양동이를 갖게 되었지만
그 시절의 설렘은 사라졌다.
이젠 참외를 하나씩 꺼내
조용히 먹는 정도다.
그래도 어쩌면,
꿈은 그렇게 현실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
조카가 강아지 ‘크림이’를 맡기러 왔다.
내일 일본 삿포로로 여행을 간다기에
아들과 함께 저녁거리를 준비했다.
불쌍한 아이.
엄마 아빠를 한꺼번에 잃고
지금은 강아지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조카.
혼자서 바람을 쐬고 오고 싶다며
몇 날 며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나는 당신에게 조심스레 부탁해 본다.
혹시 그곳에서 오빠와 새언니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 조카 소식 좀 전해달라고.
홀로이지만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지금도 누군가에게 작은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고.
오늘 저녁,
우리 식탁엔 평양냉면과 해산물 물회,
삼겹살이 함께 올랐다.
당신이 앉았던 자리에
오늘은 조카가 앉았다.
조금 낯설고,
조금 먹먹했다.
내일부터 며칠 동안은
강아지 쿠키와 크림이
두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나설 예정이다.
길 위에서 당신 생각이
더 자주 날 것만 같다.
6월의 첫날밤이 깊어간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흐르고,
나는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한다.
이 밤, 당신도 잘 지내기를.
다정한 꿈 하나쯤은
함께 꾸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