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하나, 또 연착되었습니다

당신 없는 시간의 속도

by 시니어더크



어떤 편지는, 마음이 앞서도 쉽게 써지지 않는다. 보내고 싶고, 들려주고 싶어도… 괜히 주저하게 되는 밤이 있다.


편지를 써야지 하면서도 오늘도 하루를 넘겼다.

그렇게 몇 번이나 타이밍을 놓친 끝에, 이제야 펜을 든다. 바쁜 것도 아닌데.

그냥 자꾸만 손이 무거웠다.

당신이라면 알았을까.

요즘 내 편지가 조금씩 늦어진다는 걸.


하루가 특별히 바쁘지도 않다. 백수처럼, 느슨한 일상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편지 한 통 쓰는 일조차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게을러진 탓일까.

아니면 당신 없는 세상이 그만큼 무거워진 것일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나 말고 누가 당신에게 편지를 쓸까.

친정 식구들 중엔 언니 한 분과 춘천에 사는 남동생이 있지만,

그분들도 당신을 많이 그리워하고 계실 것이다.

생전 그렇게 잘해주시던 분들이니까.

말은 없어도, 마음은 누구보다 애틋하겠지.


이상하게도 당신이 떠난 뒤로는 연락이 점점 뜸해졌다.

나도 궁금하다.

소식이 닿으면 가장 먼저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얼마 전, 춘천의 처남에게 전화가 왔다.

“매형, 어떻게 지내세요?”

그 짧은 안부 한마디가 유난히 뭉클했다.

당신이 곁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서로 자주 오가며 소식 나눴을 텐데.

이제는 모든 연결이 조용히 멈춘 듯하다.


당신은 참 귀한 사람이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였으니까.

이제야 당신의 자리를 더 절절하게 깨닫는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제시간에 편지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살아 있을 때의 나는 그렇게 부지런했었는데.

당신이 떠난 뒤로는 삶이 한없이 느려지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아이들 앞에서는 괜히 어깨 펴고 살아보려 애쓰는 중이다.

내 슬픔이 그들에게 옮겨가진 않도록.

허전함은 나 혼자 감당하면 되니까.


오늘은 의정부 법원에 다녀왔다.

부동산 경매가 열리는 법정이다.

10시 반쯤 도착했는데, 예전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 놀랐다.

20대 젊은 아가씨부터 머리 희끗한 노인까지 다양한 얼굴들이 북적였다.


이젠 경매가 대중화된 걸까.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눈빛이 번득이고, 손에 입찰서를 꼭 쥐고 있는 사람들.

그 안엔 집을 잃을 위기에 놓인 소유자도,

보증금을 걱정하는 세입자도 함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당신과 함께 갔던 그 법정이 생각났다.

그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법정이 꽉 찼다.

경매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일까?

아니면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모두가 발걸음이 분주해 보였다.


나는 오늘 분위기만 살폈다.

올해는 한두 건만 시도해보려 한다.

최소 한 건이라도.

그리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뛰어볼 생각이다.

운동화 밑창이 닳도록 발품 팔아가며,

당신이 늘 옆에서 응원해 주던 그 시절처럼.


밤이 깊어간다.

오늘도 당신이 그립다.

혹시, 꿈속에라도 와줄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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