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옷을 접으며, 아내를 만났다.

손끝에 남은 기억

by 시니어더크



장롱 옆에 놓인 박스가 자꾸 쓰러지려 했다.

그 안에는 아내가 입던 옷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쓰러질 듯 기울어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오늘, 그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 있었다.

계절마다 그녀와 함께한 기억들이

옷감 사이사이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옷 하나 꺼낼 때마다 그때의 대화, 표정, 움직임이 떠올랐다.

그 모든 기억이 옷에 스며 있었던 것 같다.


아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

지하상가를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넓은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옷매장이 넓게

따로 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자주 가던 옷가게가 있었다.

퇴원하는 날이면 꼭 들렀다.

"오늘은 기념으로 하나 사자."

"치료받느라고 고생을 너무 많이 했으니

보상차원에서 하나 삽시다."

그 말은 우리의 습관처럼 익숙했다.


옷을 고를 땐,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내가 추천한 색을 입어보곤 했지.

거울 앞에서 살짝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그 순간마다 나는 무조건 좋다고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아내는 어떤 옷을 입든 예뻤고,

그날 웃고 있는 모습만으로 충분했다.


사실, 그 옷들은 싸지 않았다.

백화점 브랜드들이 많았고,

병원비로 빠듯한 살림에 가끔은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치료받느라 힘든 시간을 견뎌낸 아내에게

그 정도 선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기념, 작지만 분명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모인 옷들이

어느새 큰 박스를 가득 채웠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그 박스를 정리하지 못한 건

단지 미련 때문만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언젠가 문 열고 아내가 돌아와

"그 옷, 어디 갔어?" 하고 물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방은 점점 좁아졌고,

나는 정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박스를 열었다.


아내가 자주 입던 옷을 꺼내 들었다.

카디건의 팔소매를 만지자

손끝으로 그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빨아둔 향이 아직 남아 있었고,

단추 하나, 주름 하나가 모두 그대로였다.

손끝이 떨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모두 정리할 순 없었다.

함께 찍은 사진 속에 자주 나왔던 옷,

가을날 공원 산책하며 입었던 옷,

그녀가 좋아했던 고운 색의 블라우스.

그 몇 벌의 추억을 따로 골라

조심스럽게 다시 박스 두 개에 가득 채워

그 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눈을 감고 천천히 봉투에 담았다.

말없이, 조용히.


그러다 몇 번이나 멈췄다.

눈물이 먼저 손끝에 떨어졌다.

정리를 하며 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접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온 시간,

사랑했던 순간,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거기 다 묻어 있었다.


방은 조금 넓어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정리란, 끝냈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더 그립고,

더 선명해진다.


남겨진 옷은 박스에 잘 정리해서 다시 장롱 옆에 잘 쌓아 두었다.

이제 그 옷들을 다시 입을 사람은 없지만,

나는 때때로 그 옷을 꺼내

아내를 다시 만나볼 생각이다.

천천히 펼쳐보고,

그 시절을 다시 꺼내어, 아내와 나눌 것이다.

그날의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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