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오늘도 흘러간다

시간의 속도에 마음이 늦춰질 때

by 시니어더크

요즘 따라 부쩍, 시간이 흐르는 속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하루하루가 말 그대로 쏜살같이 지나간다. 눈을 뜨면 벌써 아침이고, 그 아침이 채 익기도 전에 해는 저만치 기울어 저녁이 되어 있다. 고요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리듬 속에서도 마음은 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몸은 살아내지만, 마음은 자꾸만 뒤처진다.


세월이 빠르다는 말을 익숙하게 들어왔지만, 그것이 이렇게 실감 나는 건 아마도 삶의 중심에서 한 걸음씩 물러나기 시작한 나이 탓일 것이다. 시간이 더 빨라진 게 아니라, 그 흐름을 지켜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젊은 날엔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까 가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하루를 어떻게 지켜볼까 가 고민이다. 빠르다는 사실이 야속하면서도, 그마저 다행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이기적인 위안일까.


그 이면엔 아이들이 있다. 이 좋은 나이에, 삶에 뛰어들어야 할 그 시기에,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때로는 원망스럽다. 마음껏 도전하고, 때론 실패하며, 자신만의 인생을 풍요롭게 채워야 할 아이들이, 바쁘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을 미루고, 상처를 두려워한 채 주춤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 흐름에 떠밀려 중요한 것을 놓쳐버릴까 걱정이 된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가장 큰 자산이어야 하는데, 정작 그 시간을 제대로 느껴볼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내게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게 말하면 주변에선 농담처럼 웃지만, 나는 진심이다. 남은 시간을 건강하게 보내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나의 자리를 정리하고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소망이자 소이다. 더는 거창한 꿈도 필요 없고, 이뤄야 할 성공도 없다. 다만 남은 시간을 나답게, 고요하게 살아내는 일. 그것이 내 하루의 전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일도 해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다시 회복되며, 삶의 결을 하나씩 배워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사람은 단단해진다. 어쩌면 나도 그 긴 시간 동안 그런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무수한 실패와 실망, 벅찬 감동과 슬픔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듯이, 아이들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며 살아가리라 믿는다.


요즘은 집 안이 텅 빈 듯하다. 함께 나누던 말이 사라진 탓인지, 아니면 늘 있던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떤 가구도, 어떤 물건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듯 어정쩡하다. 마치 한 사람이 사라진 뒤, 남겨진 것들마저 길을 잃은 것 같다. 그런 느낌은 이따금 나를 멈춰 세운다.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그 자리에 당신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고, 허공에 멈춰 선 시선은 그대로 한참을 머문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자꾸 남의 삶이 궁금해진다. 이 지구 위에 약 80억 명이 살아간다는데, 그들은 어떻게 하루를 채워가고 있을까. 어떤 이는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또 어떤 이는 고요하게 사색하며, 누군가는 뜨겁게 사랑을 시작하고, 다른 이는 조용히 이별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그것이 누군가에겐 영겁처럼 길고, 또 어떤 이에게는 찰나처럼 짧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블로그를 보다 보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몸을 단련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이들. 그들의 의지는 존경스럽고, 그 성실함은 때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 하루는 어떤 색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자꾸만 그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문득 나도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볼까 싶다. 오래전 포기했던 공부를 다시 해볼까. 새로운 자격증에 도전해 볼까. 아니면 가벼운 여행 영어부터 시작해 볼까. 곧 다가올 연휴엔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그 준비로라도 영어회화를 시작해 보면 좋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이 쓸모없는 공상처럼 느껴지다가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운다.


물론,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건 결국 '부재'라는 감정 때문이다. 예전엔 하루의 끝마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통하던 그 시절의 따뜻함이 있었다. 지금은 그 모든 이야기를 혼자 되뇌고, 종이 위에 적어 내려간다. 마음속 빈자리를 글로 채우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나다.


글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 조리 있는 문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저 이렇게 써 내려간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작은 위안이다.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들이,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조용히 나를 토닥인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건너왔다고.


시간은 오늘도 흘러간다. 누구의 것도 아닌, 누구에게도 머물러주지 않는 그 시간을, 나는 나만의 속도로 따라간다. 느리지만 분명히, 서툴지만 묵묵히.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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