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은 사랑이었다

그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담긴 시간

by 시니어더크

밥상은 사랑이었다.

처음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매일같이 식탁 위에 놓인 밥 한 그릇, 반찬 몇 가지, 따끈한 국 한 사발.
그저 '먹는 일상'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사라지고, 빈 식탁 앞에 홀로 앉고서야 깨달았다.
그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말 없는 사랑이었다.
매일 세 번, 사랑이 밥으로 차려지고 있었다는 것을.


결혼한 지 오래되면 밥상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아침 햇살이 부엌에 들고,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소리가 부지런히 울려 퍼지면

하루가 시작된다.
서로 말이 없어도, 그 조용한 식탁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깃들어 있다.
처음엔 함께 요리를 하기도 했다.


서툰 손으로 양념을 넣고, 싱거운 국에 소금을 더하다 웃었던 기억.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고,

나는 익숙하게 받아먹는 사람이 되었다.

늘 그랬듯 당연한 듯 앉았고, 밥은 늘 따뜻했고, 반찬은 늘 정갈했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니라 '습관'처럼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병으로 쓰러졌다.
식탁에 앉던 자리는 비었고, 조용히 밥을 차리던 손길은 멈췄다.
나는 냉장고 앞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던 날이 생각난다.
어떤 재료가 어디 있는지, 뭘 꺼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국 하나 끓이는 일도 낯설었다.


그렇게 겨우 만들어 낸 밥상 앞에 앉은 아내는, 힘없이 몇 숟갈만 떴다.
이내 수저를 놓고 돌아누운 뒷모습.
말 한마디 없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박혔다.
더 맛있게 해주고 싶은데, 더 많이 먹게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든 건 "오늘은 뭐 먹을까요" 하는 질문이었다.
"그냥 아무거나 먹어요."
이 말이 가장 막막했다.
아무거 나가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뜻이란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떻게든 입에 넣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반찬을 만들었고,

국물 간을 수없이 맞춰봤다.
하지만 정성만으로는 입맛을 돌릴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 그게 전부였다.


하루 세끼.
그 수많은 시간 동안 아내는 나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식탁을 차려왔을까.
장 보러 간 날, 마트에서 무얼 집을까 고민하며

내 입맛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반찬을 덜며, 간을 보며,

이게 좋을지 저게 좋을지 생각하며 나를 떠올렸겠지.
그 정성이 수십 년을 이어져 왔는데,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이제는 내가 밥을 지을 차례였지만, 정작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밥을 지어도, 국을 끓여도, 반찬을 곁들여도…

그 식탁은 늘 비어 있었다.
혼자 앉은 밥상은 너무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가슴을 울렸다.
그저 밥 한 공기를 앞에 두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도 많았다.
입으로는 밥을 넘기지만, 마음속에는 그리움만 가득 찼다.


밥상이란 단순히 식사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건 함께 살아가는 부부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작은 세상이었다.
그곳에서 사랑을 먹고, 마음을 나누고, 삶을 버텼다.
지금은 뒤늦게 깨닫는다.
밥을 차리는 일은 곧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었음을.
그리고 그 밥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당연한 듯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그 밥상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하지만 그 시간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부디 누군가는 나처럼 후회하지 않기를.
오늘 하루, 사랑하는 이에게 밥을 지어주기를.
혹은 그 마음을 알아차려 주기를.


사랑은 말보다 오래 남는 밥상에 있었다.
뜨겁게 지은 쌀밥 한 공기 속에, 아내의 삶이 있었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밥상이 있다.
아내가 병세가 깊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정성껏 차려준 아침 밥상이었다.
밥은 고슬고슬했고, 된장국에서 나는 구수한 향은 은은하게 퍼졌고,

반찬 그릇에는 내가 좋아하던 오이무침이 올려져 있었다.


그날따라 아내는 힘들게 일어났지만,

묵묵히 식탁 앞에 앉아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당신이 좀 잘 먹어야겠어요."
그 말이 왜 그렇게 낯설고도 가슴에 맺히던지.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밥상이 이별을 준비한 아내의 마지막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나는 자주 혼잣말을 한다.
"이 반찬은 당신이 참 좋아했었지요."
"이 국물 맛, 당신만큼은 못 맞추겠네요"
조용한 부엌에서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듣는다.
밥을 짓는 손끝에서 울컥할 때도 있고,

먹다 남긴 밥그릇을 보며 한숨을 내쉴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밥상을 차린다.
아내가 늘 그러했듯, 정성을 담아 하루를 버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밥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밥이란, 그 사람의 손길이고 마음이고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
밥상은 그렇게 기억이 되고, 하루를 견디게 하고,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혼자지만 밥을 짓는다.
텅 빈 식탁 위에도 아내의 온기가 앉아 있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을 기억하는 한, 나는 아직도 사랑을 먹고 있는 셈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밥상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한 끼의 밥이 얼마나 큰 마음인지, 나처럼 뒤늦게 알아차리기 전에...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짓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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