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와 웃음 사이 – 월미도의 추억

다시 그런 날이 돌아온다면

by 시니어더크


2017년 3월, 아직은 봄바람이 찬기를 머금고 있던 어느 날, 우리는 인천 월미도로 향했다. 바다를 본다는 건 그 자체로 마음의 환기가 되는 일이었다. 병원과 집, 그리고 다시 병원을 오가던 일상이 계속되던 그즈음, 우리는 잠시라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내는 모처럼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그저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카메라를 챙겼다.


지하철을 타고 인천역에 도착하니, 역 앞 풍경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가족들과 다녀간 적이 있었던가. 아내와 딸, 그리고 나는 버스 대신 택시를 탔고, 기사님은 우리가 관광객인 걸 알아채곤 "갈매기 새우깡 조심하세요. 한 봉지 뺏기는 분들도 있어요"라며 웃었다. 아내도 피식 웃으며 "나도 뺏기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병원 복도에서는 보기 힘들던 표정이었다.


월미도의 바다는 늘 그렇듯 자유로운 풍경을 품고 있었다. 여객선이 유유히 지나는 수면 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녔고, 부둣가에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손에 손 과자를 들고, 갈매기를 부르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특별했다.


우리는 손에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들에게 다가갔다. 아내는 조심스레 봉지를 열고 하나를 꺼냈다. 그녀는 손끝에 새우깡을 얹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한 마리 갈매기가 바람을 가르며 다가왔고, 그녀의 손에서 자기들의 간식인 양 낚아채갔다. 놀란 듯 소리를 내지르던 그녀의 입가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가까이 와서 먹네. 신기하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 아내는 회색 코트를 입고, 머리는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따뜻한 빨간 패딩을 입은 딸이 있었고, 두 사람의 표정에는 오랜만에 피어난 해사한 웃음이 담겨 있었다. 그날 찍은 사진 한 장이 지금도 내 앨범 속 깊은 곳에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다.


바다를 마주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어묵 국물로 손을 녹이던 순간도 생생히 떠오른다. 아내는 잔잔히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랑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말보다 더 깊은 대화가 그 침묵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겪고 있던 모든 고통과 걱정이 파도 소리에 묻혀 사라지는 듯했다.


점심은 해산물 칼국수였다. 오래 줄을 서야 했지만, 아내는 오랜만에 외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레는 듯했다. 국물 한 숟갈에 "역시 바닷가 국물 맛은 다르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모습, 딸에게 젓가락으로 낙지를 건져주던 손길, 모두 선명하다. 그날 그녀는 많이 먹지 못했지만, 식사 내내 웃음이 많았다.


돌아오는 길, 해가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서쪽 하늘 아래 월미도의 바다는 깊어만 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등지고 걷다가, 문득 아내가 말했다.


"다음엔 배 타고 작은 섬도 가보고 싶어요. 더 따뜻해지면요."


그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그녀의 병세는 그 후로 점점 깊어졌고, 바다 대신 병실의 창밖 하늘만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이제 아내는 내 곁에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공기와 냄새, 햇살과 바람은 지금도 생생하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던 그녀의 손끝, 웃음 짓던 얼굴, 바다를 바라보던 그 눈빛까지도 또렷하다. 월미도라는 지명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혹시 그 바다 어딘가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아직 남아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소소한 행복 속에서 큰 위로를 받으며 살았다. 병마와 싸우던 그녀의 하루하루는 고단했지만, 짧은 외출, 짧은 바람, 짧은 웃음 하나로도 그날은 환해졌으니까. 그 모든 기억이 이제는 나의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사진을 꺼내본다. 그 사진 한 장에는 우리가 함께 나눈 삶의 온기가, 바다와 갈매기와 웃음이 담겨 있다. 그녀는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추억을 품은 채, 오늘도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월미도 바다 앞에 서게 된다면, 나도 손에 새우깡 하나를 들고 갈매기를 불러보리라. 그녀가 했던 것처럼.


그날처럼 바다가 푸르고, 갈매기가 날며, 마음이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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