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을 열면, 그 시절이 흘러온다

여덟 살 아이의 편지, IMF의 기억

by 시니어더크


사주단지


문득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아내가 평생 곁에 두고 쓰던 자리였다.
서랍을 여는 순간, 오래된 가구 특유의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그 향기만으로도 아내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내는 매일 아침이면 그 화장대 앞에 앉았다.
머리를 빗고, 아이들 머리도 곱게 묶어주며 하루를 시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아내의 흔적을 더듬었다.
이제 거울 속에는 내 얼굴만 덩그러니 비치지만,
어딘가엔 여전히 아내의 숨결이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서랍 안에는 작은 보석함이 고요히 놓여 있었다.
겉은 조금 바랬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내가 건넸던 사주단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젊은 날의 설렘과 약속이 담긴 그것은 여전히 고이 접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내가 아내에게 보냈던 수많은 카드와 편지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생일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그리고 무엇보다 많았던 결혼기념일 카드들.
서른여덟 장의 카드가 한 장도 빠짐없이 남아 있었다.


카드 하나하나를 꺼내어 읽는 동안,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그 시절 그곳에는 늘 같은 말이 적혀있었다.
"조금만 참아요. 우리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낸 시간이 그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IMF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겨우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이던 때였다.
그해 겨울, 세상은 그야말로 한파 속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 무렵,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IMF, 구조조정, 정리해고라는 단어들이 쏟아졌다.
신문의 활자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동네 슈퍼마켓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았고,
길거리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 한숨을 내쉬었다.
지갑을 열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다.
아내 역시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 밤, 거울 앞에서는 분명 깊은 걱정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빛을 알아채곤 했다.


보석함 속에는 그 시절 딸아이가 쓴 편지도 들어 있었다.
아직도 또렷한 그 글씨.
삐뚤빼뚤한 글씨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 아빠 힘내세요. IMF로 많이 힘드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우리나라가 곧 좋아질 거예요.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고작 여덟 살.
세상이 얼마나 힘든지, 집안의 분위기가 얼마나 무거운지
어린 마음에도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단어들을 듣고,
어린아이 나름의 방법으로 부모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
편지 한 장만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딸과 아들은 용돈을 아껴 석 달 동안 꼬박 모았다.
그리고는 결혼기념일이 되자 작은 케이크와 꽃다발, 소박한 선물,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어린 손으로 부모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감싸던 그 마음은
지금 돌이켜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따뜻하다.


보석함 깊숙한 곳에는 결혼 예물도 고이 남아 있었다.
결혼식 때 주고받았던 반지와 목걸이가 고운 수건에 싸여 그대로였다.
아내는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힘든 날에도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묵묵히 우리 가족을 지켜낸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아내를 빼닮았다.
어릴 때부터 기념일이면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고,
그 습관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함께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넷'이었다.
여행을 가도, 식탁에 앉아도
언제나 네 식구가 함께였다.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준다.


서랍을 닫으며 생각했다.
이 작은 보석함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견뎌낸 시간,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도, 이런 기억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또다시 서랍을 열게 되면
그 조용한 기억들은 다시 내 마음을 건드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조용히 눈시울을 적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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