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고, 딸의 생일을 맞이한 하루

조용한 인사, 그리고 작은 축하

by 시니어더크


그날은 약속한 날이었다.

오후 한 시 반, 보랏빛 꽃다발을 들고 길을 나섰다.

양주 IC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려 청평을 빠져나오자, 익숙한 경춘가도가 이어졌다.


참 많이도 지나다녔던 길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사 현장도 여기저기 보였다.

청평과 가평까지 이어지는 곳.

드문드문 보이는 아파트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정말, 우리나라는 아파트 천국이구나.'


평일의 도로는 한산했다.

막힘없는 길을 달리자 마음까지 한결 가벼워졌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 머리 위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구름이 따라왔다.

덥지 말라고, 힘들지 말라고 가려주는 듯한 구름이었다.


중간에 유일한 '벚꽃길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김밥과 우동 한 그릇을 나눠 먹고, 커피 한 잔씩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조용한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주차장에는 직원 차량 몇 대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날, 성묘객은 우리뿐이었다.



그 넓은 공원을 온전히 우리 셋이 차지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랏빛 꽃다발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한 송이, 한 색깔 신중하게 고른 꽃이었다.

꽃을 좋아하던 아내가 떠올랐다.

어떤 향기든 좋아했을 그 사람.

이 꽃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지난번 꽃은 시들어 치워 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바람에도 잘 견뎌주기를 조용히 바랐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를 올렸다.

고통과 아픔 모두 내려놓고, 평온한 곳에서 편안히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아이들도 저마다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빌었을 것이다.


공원을 떠난 우리는 서울 반포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세빛섬의 채빛퀴진에서 딸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막혔다.

영동대교부터 반포대교까지는 시속 15km 남짓, 두 시간이 훌쩍 걸렸다.

그 순간, 아내와 나눴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가 서울을 떠나 시골로 가자고 했었지."

그 말이 새삼 마음속에 울렸다.

지금 사는 동네가 다시 고맙게 느껴졌다.



겨우 예약 시간에 맞춰 세빛섬에 도착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딸의 생일을 축하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아내도 그 자리에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이 먹어라, 생일 축하한다"는 따뜻한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음식도 좋고 분위기도 훌륭했지만, 비어 있는 한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웃으며 배부르게 먹었다.

생각나는 사람이 떠올라한 접시 더 담아 먹었다.

다음에는 처형도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근황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뒤 아들이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까지는 한 시간 남짓.

현관문을 여니 쿠키가 반가움에 현관과 거실을 쉴 새 없이 오갔다.

혹시, 익숙한 향기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늦은 밤, 집에서는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함께 축하 노래를 부르고 한 조각씩 맛만 보고 내일 다시 먹기로 했다.

예전에 늘 사던 크라운베이커리의 하얀 초콜릿 케이크가 생각났다.

촉촉하고 부드러웠던 그 맛.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라 더는 만날 수 없지만,

그 시절의 기억만큼은 여전히 선명했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 따뜻했다.

초록으로 물든 여름 풍경 속, 조용히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리고 가족이 함께 웃으며 마무리한 늦은 생일 파티.

그날의 하루는 조용히 마음 한편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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