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마지막 여름의 이름
장마철이지만 비는 드물고, 무더위가 성큼 다가왔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더운 공기에 거실 에어컨을 켰지만,
쉽게 식지 않는 공기가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이런 날이면 바다가 떠오른다.
햇살 가득한 백사장과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리고 그 바다를 좋아하던 한 사람의 얼굴.
가족 여행으로 가장 자주 갔던 곳은 동해안이었다.
그중에서도 속초는 유독 많은 기억이 쌓인 곳이다.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
그리고 항구 주변의 소박한 풍경들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강원도가 고향인 그녀에겐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기도 했다.
대포항은 그때의 속초를 가장 잘 기억하게 만드는 곳이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예전 개발되기 전의 모습은 참 정겨웠다.
둥그런 항구를 따라 노점이 쭉 늘어서 있었고,
배에서 바로 내리는 생선들을 볼 수 있었다.
소박한 그 풍경 속에서 우리는 해마다 여름을 맞았다.
아이들이 어릴 적,
스틱인 중고차를 장만하고 처음 떠난 가족 여행도 속초였다.
그때는 미시령 터널이 생기기도 훨씬 이전이어서
험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속력이 안 나 2단 기어로 겨우 올라가던 그 길,
뒤에 오던 차들은 모두 추월해서 가고 보이지 않았다.
휴게소마다 들르느라 10시간이나 걸렸지만
그 긴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차 안에는 간식과 과일이 가득했고
작은 것들에도 우리는 웃고 즐거워했다.
여름이면 과일을 유독 좋아하던 그녀와 나는
수박, 참외, 복숭아처럼 시원하고 달콤한 과일을
어김없이 챙겨 넣었다.
그 덕분에 여행길이 더 맛있고 풍성했었다.
회사에서 잡아준 여름 휴양지도 대부분 동해안이었다.
강릉의 호텔에 묵었던 기억도 남아 있다.
비행기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떠난 그 여행에서
조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녀는 아침부터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동해안 이야기를 꺼내게 된 건
작년 여름의 마지막 여행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30일.
그녀가 떠나기 3개월 전 일이다.
몸이 많이 힘들었던 그녀가
“바다에 한 번만 더 가고 싶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속초로 향했다.
롯데리조트 꼭대기 층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자마자 외옹치 해변으로 나갔다.
휠체어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야."
예전 같았으면
모래사장을 걷고 바닷물속으로 뛰어들어갔을 그녀였지만,
그날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한참 동안 말없이 바다를 보았다.
"좋지?" 하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뿐이었다.
말이 없어도
모든 감정이 전해지던 순간이었다.
그 여행이 그녀의 마지막 바다였다.
그 후로는 나도 속초를 다시 찾지 않았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다가 변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없으니
이젠 의미가 달라져 버렸다.
가끔 뉴스나 화면 속에 속초가 나올 때면
그때의 모습이 불쑥 떠오른다.
함께했던 시간,
그리움 속에 맴도는 여름의 공기,
그리고 아직도 선명한 그녀의 미소.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그녀를 만나러 간다.
평일이라 덜 막힐 것 같아
이번엔 일정을 조금 앞당겼다.
꽃다발도 준비해 두었다.
여름 햇살처럼 밝고 예쁜 색으로 골랐다.
그녀가 기분 좋게 웃으며
조용히 받아주기를 바란다.
다시 여름이 시작되었다.
바다는 여전히 거기 있겠지만,
그 여름,
그 바다는 이제 마음속에서만 파도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