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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 비친 나의 사랑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by 시니어더크


이선희의 노래 〈인연〉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내 정숙 씨를 떠올린다.


스치듯 지나간 한 사람이

어느새 내 삶의 전부가 되었다는 그 한 줄의 가사.

그건 노래가 아니라

내 인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연’이라 하면 우연을 말하지만

나에게 인연은 운명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세상이 내게 건넨 한 장의 약속서 같았다.


그날 이후,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 처음 마주 앉았던 1986년 다방의 창가에는

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있었다.


어색한 미소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 미소 하나에 마음이 끌렸다.


그때는 몰랐다.

그 순간이 평생을 바꿀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그 후로 우리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쌓아온 수많은 계절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녀는 내게 사계절의 모든 색이었다.


봄에는 새싹처럼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여름에는 그늘처럼 시원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가을이면 단풍을 보러 나서며 소박한 행복을 나눴고,

겨울에는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감싸주었다.


그녀와 함께한 날들은

계절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내 삶의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인연의 길에는

언제나 이별도 함께 온다.


그녀가 내 곁을 떠난 날,

세상은 모든 소리를 잃은 듯 고요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같은 식탁에 앉아

그녀가 좋아하던 노래를 조용히 튼다.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이 구절이 흘러나올 때면

눈물이 고이지만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그녀는 내게 영원히 돌아올 사람이라고,

이 노래는 그렇게 속삭여 준다.


사람들은 이별이 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믿는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웃고,

내 하루의 틈마다 조용히 말을 건넨다.


길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

찬바람 속에서 그녀의 향기를 느낄 때,

그 모든 순간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나는 이 노래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스치듯 지나간 그 인연이 내 삶의 전부가 되었네.”


이 한 줄이 내 인생의 요약이자,

내 사랑의 이름이다.


병마와 싸우던 날에도

그녀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미소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환하게 빛난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또 속삭인다.


“정숙 씨, 오늘은 날이 많이 추워요.

당신이 있었다면 이불속이 참 따뜻했을 텐데요.”


그렇게 말을 걸다 보면

노래 속 가사처럼 바람에 실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억해요, 우리 함께 했던 시간, 그 모든 걸.”


그녀의 대답이 들리는 듯하면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인연〉은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다.

그건 이별 이후에도 이어지는

영혼의 대화이고,

서로를 향한 영원의 약속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노래를 들으며 믿는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녀가 남긴 온기와 기억은

내 하루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고,

그녀의 부재는 오히려

더 깊은 사랑으로 남았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이 생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나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을 다시 만나러 오래 걸렸네요.

그래도 약속은 지켰어요.”


정숙 씨,

당신과 나의 인연은

시간을 넘어, 생을 넘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생의 끝을 돌아서도

그 약속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대라는 인연이,

내 삶의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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