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소임을 다하는 휠체어

비어 있는 휠체어에 고인 13년의 숨결

by 시니어더크


​13년이라는 긴 세월, 모진 병마와 싸우던 아내는 이제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마다 그리움이 고여 있지만, 유독 시선이 머무는 곳은 거실 한구석에 고이 접혀 있는 휠체어다.


​평소에는 벽에 몸을 기대고 숨을 죽인 채 서 있는 저 휠체어. 한때는 아내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 바깥세상의 바람을 실어 나르던 물건이다. 이제는 주인을 보냈으니 제 역할도 끝난 법한데, 휠체어는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품을 내놓는 날이 되면 다시금 제 몸을 활짝 펴고 소임을 다한다.


​차곡차곡 쌓인 신문지와 빈 병들을 등에 업고 현관문을 나설 때면, 휠체어는 예의 그 익숙한 바퀴 소리를 내며 구른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를 태우고 조심스레 뒤에서 밀며 걷던 그 숱한 날들. 행여나 턱에 걸려 아내가 놀랄까 봐 손잡이를 쥔 손목에 힘을 주며 보폭을 맞추던 그 순간들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오늘도 재활용품을 가득 싣고 구르는 바퀴 소리 위로 아내의 온기가 겹쳐진다. 휠체어를 밀어 옮길 때마다 손등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뜨거웠던 우리들의 시간을 환기시킨다.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그런 나를 더욱 울컥하게 만든다. 나보다 지긋한 연배의 두 분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풍경. 그 평범한 '나란함'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했던 기적이었음을 이제야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도 저들처럼 그저 나란히 앉아 저무는 노을을 함께 배웅할 수 있었다면….'


​소임을 마친 휠체어를 다시 접어 구석에 세워두며, 나는 가만히 그 등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차마 소리 내지 못한 말을 마음속으로 전해 본다.


​"보고 싶다, 여보. 정말로 보고 싶다."


​비어 있는 휠체어 너머로, 나의 이 간절한 부름이 바람을 타고 그곳까지 닿기를 가만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