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만의 여섯 번의 약속
사랑하는 정숙 씨,
언제 비가 왔던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오늘은 또다시 햇살이 따뜻하게 비췄답니다.
아니, 조금 덥다고 해야 할까요.
기온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이니 땀이 흐릅니다.
정숙 씨, 오늘이 우리 아들의 생일인 거
알고 있을까요?
우리 가족은 언제나 특별한 날이면
항상 이벤트를 했지요.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고 소박하게라도, 지금까지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잖아요.
일 년에 여섯 번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 가족은 그날만큼은 꼭 모여
파티를 즐겼지요.
아마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어요.
그 특별한 여섯 날은 이렇지요.
제일 먼저는 당신의 생일,
1월이고 우리 가족 중 제일 빠른 날이지요.
두 번째는 제 생일입니다. 저도 역시
당신과 같은 1월생이지만
당신보다 이틀 늦는 바람에
두 번째가 되었네요.
세 번째는 아들의 생일이고,
네 번째는 딸의 생일입니다.
다섯 번째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지요.
가을, 날씨 좋을 때
우리는 백년가약을 맺었지요.
비록 백년가약이라 했지만, 우리는 38년 동안
진심으로 서로를 지켜주었고,
그 시간만으로도 내겐 백 년을 함께한 것처럼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특별한 날은
크리스마스지요. 예수님의 탄생일.
세상엔 많은 종교들이 있고,
사람마다 섬기는 대상은 다 다르지만
서로의 믿음을 존중해야 하겠지요.
우리 가족은 결혼하면서부터
하나님을 섬겨왔기에,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잖아요.
이렇게 일 년에 여섯 번은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지요.
연초가 되면 언제나 달력에 큼직하게 표시를 해놓고
잊지 않도록 준비해 두었지요.
다만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당신과 저, 둘만의 이벤트였지만요.
당신과 저의 생일은
이틀 차이라서 항상 당신 생일날에
함께 미역국을 끓여 먹고 케이크를 잘랐지요.
근사한 곳에 가서 맛있는 요리로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고요.
제 생일날 따로 하지 않고
당신 생일날 함께 했다고 해서
제가 삐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믿어줘요.
제 성격 잘 알지요?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차츰차츰 아이들이 자라면서
우리 생일파티를 도맡아 해 줬지요.
용돈 받은 돈을 아껴 선물을 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편지를 쓰고
장식도 했지요.
그날 우리는 행복감에 젖어
샴페인을 터뜨리곤 했어요.
그렇게 일 년에 여섯 번의 이벤트는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였고,
네 식구가 모여 그 시간을
항상 즐겼습니다.
어떨 땐 처남, 처형도 함께했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당신에게
생일날, 결혼기념일날 바친
꽃다발만 해도 몇 개가 될까요?
매년 최소 두 번은 꽃 선물을 했으니
계산해 보면 76개의 꽃다발을 바쳤네요.
참고로 마지막 38번째 결혼기념 꽃다발은
아직도 제 방 책장 위에 잘 있답니다.
6개월이 지났지만 곱게 바짝 말라
그대로 보관 중이에요.
그 외에도 아이들 낳을 때, 백일 때, 돌잔치 때
당신에게 바친 꽃까지 합치면
꽃집 하나는 차리고도 남았겠지요.
정숙 씨, 오늘은 아들의 생일 이야기를 하려다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네요.
아들 생일이지만 평일이라 바빠서
토요일에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어요.
이번 아들 생일파티는
당신 없는 셋만의 파티가 되겠군요.
예전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어딘가 허전하고 쓸쓸한 파티가 될 것 같고,
생일을 맞이하는 아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엄마가 없는 생일파티, 과연 기쁠까요...
그래서 우리 셋은 이렇게 결정했어요.
돌아오는 토요일, 생일파티를 하되
먼저 당신이 계신 경춘공원에 가서
당신을 뵙고 오는 것으로요.
그래야 덜 허전하고, 덜 그리울 것 같아서요.
정숙 씨, 별생각 없이 떠들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나 봅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편안히 지내시고, 내일 또 보기로 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