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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순두부 10원, 2만원의 추억

찬밥 신세 순두부, 그리고 당신 생각

by 시니어더크


며칠 전 골드마트에서 사 온
순두부 팩 하나가
냉장고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반찬을 찾을 때마다 한쪽으로 밀려나며
어느새 찬밥 신세가 된 순두부.
한마디로, 제때 쓰지 않은 식재료였지요.


보통 식료품은 가까운 리치마트에서 사지만
그날은 왠지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떨어진 골드마트까지 걸어갔지요.
집에서 대략 20분 거리,
그리 멀지는 않은 길입니다.


날이 맑아서인지
마트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저도 한 바퀴 돌며 물건들을 천천히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이 마트를 찾은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항상 ‘세일’을 하니까요.
장바구니를 들고 걷는 이 작은 여유가
그날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골드마트는 예전 롯데마트 자리에 들어선 임시 매장입니다.
정숙 씨도 그 롯데마트 잘 알죠?
우리가 자주 함께 갔던 곳.


지금은 건물의 5개 층 중 1층만 마트로 쓰고 있어요.
간판도 임시 현수막이고,
인테리어 없이 물건들만 빼곡히 놓여 있는 모습.
이곳에서 오래 장사할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장 보는 재미는 여전했습니다.
그리운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곳저곳 천천히 둘러보다가
‘10원’이라는 믿기 어려운 가격의 순두부를 발견했지요.
1인당 1개 한정이라 하나만 사 왔습니다.


그 순두부가, 오늘 아침
딸과 함께한 식탁 위로 올라왔습니다.


아침이라기보다는 브런치였지요.
늦은 시간, 조용한 식탁에서
순두부찌개를 끓이며
문득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정숙 씨, 오늘 식사는 단돈 10원이었어요.”
속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곁에 없지만,
아직도 나는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익숙한 음식, 익숙한 풍경이
그리운 당신을 데려오는 순간이지요.


저녁은 딸이 간단히 샌드위치로 먹자고 해서
SUBWAY에 주문을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직접 만들자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딸은 바로 전화를 걸더군요.


샌드위치 두 개와 매콤한 샐러드.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온 뒤라
부담 없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무려 2만 원이 넘었습니다.


오늘 하루 식사,
아침은 10원,
저녁은 2만 원.
숫자만 보면 우습기도 한 하루였지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그랬어요.
마트에 가면 늘 “이건 너무 싸다!”며
내 손을 끌어당기던 당신의 목소리.
그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장바구니 안에 고르고 또 고른 식재료들,
둘이 함께 만든 식탁,
그 조용하고 다정한 풍경이
이제는 제 마음속 추억으로만 남아 있네요.


그래도 그 추억 덕분에
혼자인 식사도 외롭지만은 않습니다.
순두부찌개 하나 끓이면서도,
당신과 나눴던 대화들이
따뜻한 국물처럼 가슴속을 데워줍니다.


딸아이는 많이 자랐고,
이제는 저보다도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있지요.
샌드위치 하나 시키는 데도
이젠 당신보다 빠릅니다.
그 모습도, 어느새 당신을 닮아 있습니다.


정숙 씨,
당신이 그립지 않은 날은 없지만
이렇게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당신은 제 곁에 함께 있습니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기억이
저를 찾아올까요.


그때도,
그 추억 속 당신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을게요.


오늘 밤도 잘 지내요.
그리고 내일 이 시간에 또 보기로 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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