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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경비교육 첫날, 그리움으로 시작된 하루

혼자 먹은 짜장면 한 그릇, 그리고 정숙 씨 생각

by 시니어더크

2025.12.3 (화) 맑음


사랑하는 정숙 씨,
오늘은 경비교육 첫날이었습니다.


교육은 총 24시간 과정입니다.
하루에 8시간씩, 사흘을 채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육을 모두 마쳐야 경찰청 이수증이 발급된다고 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시험도 본다고 하니 조금 긴장됩니다.
그래도 제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정숙 씨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아침 7시 27분,
덕계역에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길음역에 도착하니 8시 22분쯤이었습니다.
강의장까지 걸어가니 8시 반을 조금 넘겼습니다.


오랜만에 타본 지하철이었습니다.
노선도는 낯설었고,
우리가 함께 살았던 미아리도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정숙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을 텐데요.


오늘은 혼자였습니다.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제 모습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강의장에 도착하여 접수를 마쳤습니다.
접수비는 11만 원이었습니다.
시청에서 무료 교육도 받을 수 있었지만,
연말이라 신청 시기를 놓쳐버렸습니다.


내년까지 기다리기엔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신청했습니다.
정숙 씨가 있었더라면
“다음에 천천히 해도 되잖아요” 하며
제 등을 토닥여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강의는 경비업법이었습니다.
오전 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11시 50분부터 점심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강의실을 나와 미아사거리 현대백화점으로 향했습니다.
9층 식당가에서 짜장면을 한 그릇 시켰습니다.
가격이 10,900원이었습니다.
백화점 식당이라 그런지 꽤 비싸더군요.


혼자 짜장면을 먹으니
자연스레 병원 다니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진료를 마친 뒤,

우리는 지하 1층에 있는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곤 했지요.


정숙 씨는 늘 짬뽕을 주문했고,
저는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그릇 다 제가 먹게 되었습니다.


짬뽕 국물을 몇 숟갈 뜨고는
남은 것을 제 앞에 슬며시 밀어주었지요.
저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정숙 씨도 다 먹지도 못했다는 사실을요.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순간조차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오후 강의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음역에서 4호선을 타고 창동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덕계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 10분쯤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과 함께 급히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따뜻한 찌개 덕분에 허기진 하루가 조금 채워졌습니다.
아들은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쯤
조용히 집에 들어왔습니다.


낮에는 일산에 사시는 넷째 형님이 다녀가셨다고 합니다.
우유와 과자를 한가득 두고 가셨습니다.
그 우유는 조카가 운영하는 서울우유 대리점 신제품이라더군요.


정숙 씨가 있었다면
매일 아침 한 잔씩 꼭 챙겨 주었을 텐데요.
이제는 그 우유를 누가 마셔야 할지
잠시 생각이 멈추었습니다.


정숙 씨,
이제 벌써 당신이 떠난 지 스무날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 속에 머물러 있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저만의 삶을 다시 살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딸의 독일 출장이 1월로 미뤄졌다는 소식도
오늘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가네요.


오늘 밤도
당신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당신의 웃음, 당신의 목소리,
그 모든 기억이
지금 이 순간 제 삶을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내일도
당신을 생각하며 성실히 살아가겠습니다.
그곳에서도
평온하시고, 늘 행복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정숙 씨를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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