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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대한민국 155분간의 게엄천하

혼란의 밤, 당신을 그리며

by 시니어더크

2024.12.4 (수) 맑음


정숙 씨,

어젯밤(2024.12.3일 밤 11시)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우리나라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지요.


궁금한 마음에 저는 얼른 TV를 켰고, 밤을 꼬박 새우며, 생방송 중계를 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 움직임을 제지하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속보를 보았을 때,
처음에는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무서운 일이었지요.



비상계엄이란, 전쟁이나 심각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나 선포되는 비상조치인데
이번엔 그 이유가 전혀 달랐습니다.
대통령의 뜻대로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계엄령이 내려졌으니까요.


전두환 정권 이후 45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 아닌가요.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한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습니다.



계엄군은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그런데도 몇몇 의원들이 담장을 넘고, 의사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족수를 간신히 채운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결국 155분 만에 ‘계엄천하’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거리엔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고,
사람들의 얼굴엔 피로와 걱정이 엿보였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며,
당신이 생전에 겪었던 고통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투석을 받아야 하는데 인공혈관이 막혀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실조차 열리지 않았던 그날.


복막염으로 장 수술이 시급했는데도
전문의가 없어 작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한 달 넘게 입원하며 큰 고통을 겪으셨지요.


섬망 증상이 나타나,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던 당신의 눈을 마주했을 때
내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 순간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혹여 당신이 나도 모르게 떠날까 봐
매일 밤 눈물로 기도했던 나날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웠는지요.


그래서인지 오늘 같은 혼란스러운 세상을 보며,
당신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곳에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전하며,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당신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또 마음 한편이 무너져 내립니다.


오늘은 경비교육이 있었습니다.
어젯밤 뉴스를 지켜본 탓인지
교육생들 모두 피곤해 보였습니다

나도 졸음을 참고
강의에 집중하려 애를 썼지요.


점심시간엔 강사님과 함께
근처 한식뷔페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대는 8,000원이었지만,
그 식사가 왜 그렇게 공허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식당 창밖으로 사람들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쩐지, 모두가 지쳐 있는 듯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하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일부터 지하철이 파업에 들어간다더군요.
시민들은 또 불편을 겪겠지요.
파업과 갈등이 이어지는 세상,
그 속에서 나는 당신의 빈자리를 더욱 깊이 실감합니다.


정숙 씨,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는
이런 혼란과 고통이 아니라
오직 평화롭고 아름다운 날들만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밤, 당신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아보려 합니다.


언제나 당신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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