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그리움은, 마지막 영상 속 당신
2025.5.22 (목) 맑음
사랑하는 정숙 씨,
어제가 부부의 날이었지만,
제게는 오늘이 더 부부의 날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고,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
당신이 나오는 영상을 다시 꺼내봤어요.
제가 자주 보는 영상입니다.
제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기도 해요.
당신이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힘겹게 숨을 쉬며 고통에 차 있던 모습.
작년 4월 초순,
갑작스럽게 저혈압이 심해져
응급실에 입원했던 그날의 기억입니다.
사흘 동안 집중 치료를 받고
조금 안정을 되찾자
81 병동으로 올라가게 되었지만,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라
일단 간호사실 옆 치료실에 머물렀죠.
간호사들이 바로 지켜볼 수 있는 곳으로
즉각 대처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그날 밤,
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간호사들이 달려오고,
주치의 교수님과 중환자실 의사들도 모두 달려와
긴박하게 당신 곁을 지켰습니다.
그날 늦은 밤, 당신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어요.
저는 병실에 놓여 있던 짐들을 정리해
복도 끝에 한쪽으로 조용히 쌓아놓았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지난 코로나 때에는
중환자실 면회가 전면 금지됐었죠.
하루에 한 번,
교수님의 전화를 통해
당신의 상태를 듣는 게 전부였어요.
그 전화 한 통을
저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숨 막히게
기다렸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에는 다행히도
하루 한 번은 직접 면회가 가능해졌고,
저는 매일 아침 9시 반,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다가
당신을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그날,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도저히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온몸에는 수많은 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혹시 손으로 빼지 않을까 걱정돼
양손에 장갑을 끼운 채
침대 난간에 묶어 놨었죠.
얼마나 갑갑하고 불편했을까,
당신 마음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머리는 감지 못해 뭉쳐 있었고,
정신도 흐릿해서
겨우 저만 알아볼 정도였지요.
그 와중에도 당신은 힘겹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안 주물러줘...”
“밥을 한 번도 못 먹었어...”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던 제 눈에서는
말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고통과 외로움을 혼자 견뎌야 했던 당신을
지켜보기만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중환자실은 보호자가 곁에 있을 수 없는 곳이잖아요.
그 긴 밤과 낮을
당신은 홀로 견뎌야 했습니다.
전에 한번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땐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혹시 또 위급한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 보내지 말라고
저에게 당부했었죠.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또다시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겪게 한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때 찍어둔 짧은 영상은
지금까지도 제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어요.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그 영상을 틀게 됩니다.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이나 영상도 많은데,
이상하게도 저는
가장 힘들었던 그 장면을
계속 찾아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맙니다.
오늘도 그랬어요.
식탁에 앉아 빨래를 개다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상을 재생했어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쿠키가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도 되네요.
말똥말똥한 눈으로
제 옆에 와서 가만히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어느새 여름 문턱에 다다랐는데
제 마음은 겨울처럼 차가운 하루였어요.
유난히 당신이 그리웠던 오늘.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지금 제 모습을,
당신은 보고 계신가요?
소리 내어 울다가
겨우 진정하고
당신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내일은 다시 일상을 살아야 합니다.
할 일이 많아요.
오전 11시엔 쿠키와 나쵸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고,
화장실 바닥타일의 누렇게 곰팡이 낀 줄눈도
새하얀 시멘트로 다시 교체해서 발라야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당신이 먼저 알아보고
“이거 새로 해야겠어요” 하고 말했겠죠.
이젠 그 말도 들을 수 없으니
제가 대신 부지런히 해야겠죠.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당신을 찾아올게요.
시간 기억하시죠?
밤 10시.
내일 밤에도 꼭 만나요.
그동안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지내고 계세요.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이 이 편지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