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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이네 Aug 25. 2023

학교를 다니면서 의외였던 것들

다들 선생님 흉내 내면서 선생님 하는거지

초등교사라는 직업은 다양한 선입견, 어쩌면 상상 속의 특징을 가진 직업이다. 나도 몇몇 선입견을 알고 있던 사람이고 그걸 통해 초등교사를 바라봤다. 교실에 선생님으로 지내보니 그 선입견들이 마냥 사실은 아니라는 걸 알아서 한 번 써 본다. 오늘도 의외였던 것들이 많았거든.


1. 초등학생들은 의외로 기억력이 좋다.

무서울 정도로 좋다. 뒤돌아서면 까먹고 했던 말 또 해야 하는 어린아이들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재미있었던 것, 좋아하는 사람이 한 말과 행동, 자기를 서운하게 했던 여러 일들을 완벽하게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좀 더 자신을 보호하고 싶을 때는 모르는 척 하거나 좀더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자기 머릿속에 확실하게 박혀있을 테다. 내가 한 약속같은 말들도 무섭게 기억한다.

 나는 학급에서 특색 활동을 가장한 맞춤법 교육, 받아쓰기 수업을 한다. 그걸 학부모님들은 모두 알고 있다. 공개되면서도 비밀스러운 이곳에 내 교육활동을 써내려가긴 하지만. 이 공간을 우리 학부모님들을 알 리가 없을 텐데도 전부 알고계셨다. 종종 띄어쓰기까지도 자세히 채점하는 내가 아이들이 띄어쓰기 횟수를 외우는 꼼수를 쓰자 부르는 순서를 맘대로 바꿨다는 것도 모조리 아신다. 나의 교육활동은 투명한 아이들을 통해 선명하게 공개되고 있었으며 조금 무서운 마음도 든다. 내 행동과 말투를 따라하는 걸 보면 정말 놀랍다. 말투부터 행동, 말씨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칠판 앞에 나와서 문제를 풀고 설명하라 하니까 그냥 조그만 내가 나와서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반 아이들 모두가 릴레이 주자로하는 363 릴레이 스태킹을 하는데 버벅대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안심시켜주고 잘하고 있다며 말을 해주더라. 이것도 내가 맨날 스포츠스태킹 지도할 때 하는 말들이었다.

 서운하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 건 웃지 못할 웃긴 이야기가 많다. 누군가 자신에게 욕설을 하거나 괴롭히면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지 말고 나에게 말하라고 했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욕을 얻어먹으면 나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하며 속상하다고 한다. 나는 느닷없이 욕을 얻어먹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상황을 꾸밈없이 제대로 알 수 있어 좋다고 위안한다. 은근슬쩍 속풀이를 하는걸까? 욕설은 심의처리해서 말해주세요 다들.

 요즘에는 내 기억력보다 아이들 기억력을 믿고 있다. 자칫 줏대 없는 어른처럼 보일 거 같아 걱정도 들지만 아이들은 나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내 물음에 쉽게 답을 해준다. 요즘에는 잘 안 까먹으려고 메모도 열심히 하는데 그래도 최고는 '아' 하고 물으면 '어' 하고 나오는 아이들 음성 메모가 빠르고 좋다.


2. 일기쓰기, 다양한 숙제는 의외로 선생님한테 숙제다.

 일기쓰기와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은 정말 책임감이 대단한 사람이다. 아이들의 교육활동에 대해 평가하고 완성도를 확인하며 앞으로의 교육활동에 반영을 한다던지, 아니면 따뜻한 말로 학생에게 격려를 해준다던지 하는 일들을 알과 중에 더 하는 거니까. 숙제를 해서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건 선생님 안 해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일기장 걷고 안 낸 사람 확인하고 20~30권의 일기를 읽고(심지어 한 두편도 아닐테지) 짧은 감상을 써주며 도장도 일일이 찍어서 다시 아이들이 가지고 갈 수 있게 정리해둬야 한다. 숙제, 수학 단원 평가같은 문제는 아이들이 풀어오면 내가 채점하고 그 종이를 다시 돌려주는데, 난 솔직히 말해 아직도 그런 문제지들을 의미있게 처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내 성에 차게 하려면 틀린 문제 오답노트도 쓰게해야 하고 다시 문제를 풀어볼 수 있게 시험지를 잘 보관해야하는데 초등학생들은 이미 종이와 상성이 맞지 않다. 손에 쥐어주면 서랍에 대충 쑤셔 넣거나 구겨버리기, 자기가 찢어놓고 찢어졌다고 종이 탓을 한다. 채점하는 것도 일인데 열심히 채점한 시험지가 나뒹구는 걸 보면 마음이 좀 아프다. 그렇다고 해서 잘 보지도 않을 파일에 정리해두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실컷 문제도 풀어 두고 바로 갖다 버리라는 것도 웃기다. 숙제를 내줘서 고통스러운 건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이다. 그리고 그 숙제들이 의미있게 남았으면 하는 욕심은 많지만 실천하지 않는 게으른 선생에게는 아주 쥐약이다. 난 방학숙제가 제일 무섭다. 한 달치 숙제 처리가 매번 쉽지 않았다. 어딜가나 비슷한 숙제, 받아들면 숨부터 막히는 숙제, 뇌에 힘풀고 대충 하고만 싶은 숙제들을 아이들은 대충 해오고, 나는 숙제의 교육적 의미에 부담이 가득한 사람 치고는 아이들처럼 대충 처리한다. 올해부터는 딱, 종이 2장. 본인 스스로도 의미 있게 간직하고 싶은 걸로 숙제를 내주고 싶다.


3. 학급 포인트, 학급 특색 활동은 의외로 선생님에게 어려운 일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진짜 어려운 일이다. 왜 담백하게, 보상 체계를 안하고 그저 교실 운영에 집중하려는지 4년차에 좀 이해가 된다. 아이들은 이런 보상 체계를 정말 좋아한다. 보상으로 행동들을 통제하고 도파민적 행복을 줄 수도 있는 걸 보면 여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단순히 학생 통제용으로만 포인트를 모으다가 마지막에 아무것도 아니란 듯 지워버리는 선생님도 있었다는데 아이들은 그 일로 상처를 깊게 받았단다. 나는 이걸 계속해서 하지만 정말 어렵다. 시작은 세금내는 아이들을 따라해서 1인 1역에 월급을 주기도 했는데 나는 그 선생님을 완전히 따라하기가 어려워서 세금내는 아이들의 좋은 교육적 가치를 전달해주진 못했다. 아무래도 봉사의 의미를 더 배워야 할 지금 단계에서 내가 하기엔 미숙한 감이 있다. 때맞춰 보상을 주는 것은 물론, 보상을 주는 기준도 내가 제대로 정하지 않으면 아수라장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버겁다. 좋은 의도에 비해 원하는 만큼 결과를 못 낸다.

학급 특색 활동 또한 즉흥형 인간인 나에게는 다소 줏대없는 마구잡이 활동이 될 수 있다. 내 교육관이 일단 정립되어야 한다. 그걸 따라서 수업의 진행 뿐만 아니라 학급 특색 활동을 기획하는 거다. 이 다음 주제는 내 교육관으로 해서 다음 학기 활동은 좀 더 정제되어야 하겠다. 준비 내용은 진행 방법, 준비물 또는 교재, 일시, 규칙 정도로 준비하면 좋겠다. 나중에 알게된 건데 이렇게 계획하는 건 선생님의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히노암' 이 사람을 만나야만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들, 그 일련의 순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4. 초등학생들은 의외로 선생님들을 쉽게 좋아한다.

 학교에서 오며가며 얼굴이 익숙할 지라도 같은 반이 되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그런데 이 깜찍한 녀석들은 본 첫 날부터 사랑한다 말하지 않나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하는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 내가 뭐라고. 우리가 전에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사랑에 함부로 빠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많은 걸 기억하려고 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있는 힘껏 나에 대해 알려고 한다. 쉬는 시간마다 쫑알대며 묻는다. 선생님 생일은 언제에여? 좋아하는 건 뭐에요? 나는 괜시리 신비주의 인 척, 안 알려주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꽤 집요했다.

어떤 아이는 내 동화책을 만들고 있다. 이야기 책을 만들랬더니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 자기가 아는 내 모습과 내 성격, 특징을 기록하려고 한다. 무슨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마음을 연 아이들은 내가 해주는 말을 귀담아 들으며 산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란게 놀랍고 고마운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과 지낼 수 있다는 것도 놀랍고 아무 조건 없이 온 마음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컷 받는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 귀하고 예쁜 사랑을 원없이 받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는 마음에 하는 행동들이 가슴 벅찬 행복이다.

사실 나도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1년짜리 인연으로 마음을 자꾸 아끼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나도 좋아한다. 올해 처음 본 아이들과 첫사랑을 매년 새롭게 시작한다.


5. 애같은 나도 의외로 선생님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들을 볼 때는 전부 결혼하신 나이든 선생님들이었는데 그다지 나에게 관심이 많지도, 사랑을 쏟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그냥 정해진 절차대로 수업을 하고 잘 못하면 혼을 내고 그런 사람들. 나는 자꾸만 그때의 선생님으로만 생각하며 선생님에 대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 20살에서 멈춰버린 내 사회적 나이에서 더 자랄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면 안됐다. 아이들은 내 말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자라나는 거더라.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는 어떻게든 어른인 척 해 본다. 가끔은 그 스무살의 내가 튀어나와 말을 제멋대로 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어야 한다는 무게감 있는 가면으로 눌러본다. 평소같으면 뱉은 말을 되돌아 보지 않았을 테지만 아이들에게 한 말은 한 번씩 되돌아보고 자책하기도 한다. 변명같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같은 사람들의 때 이른 어른 흉내라는 생각이 든다. 거 몇 년 먼저 태어났다고 아주 어른 취급 받으며 이 아이들을 이끌어 가야한다는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게 싫어서 어떻게든 책을 읽고 스스로를 키워보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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