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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갑 Mar 22. 2024

당신의 육각형은? 글쓰기로 갈고닦는 인생 목표

(7) 메타 영역

지난주까지 자유의 육각형을 이루는 여섯 가지 꼭짓점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6대 영역은 차례대로 신체, 정서, 인지, 경제, 기술, 그리고 예술입니다. 삶을 둘러싼 여러 가지 영역을 거칠게 나눈 것입니다. 앞의 세 가지는 자아를 구성하는 필수 영역인 반면 뒤의 세 가지는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종류의 영역입니다. 


여섯 가지 영역의 각각에 대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모든 영역에 골고루 힘쓰는 것이 바로 제가 발견한 인생 가치관입니다. 자유와 균형의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타인이나 세상에 덜 의존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주도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저는 제 삶의 주인으로서 살고 싶습니다.


자유롭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간다. 나를 사랑하니까.


삶의 지향점을 두고, 그곳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까닭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고,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즉, 자유의 육각형은 저의 인생 가치관과도 같습니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 자유와 균형을 꼽았고, 그걸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육각형의 형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꼭짓점을 제가 중요시하는 삶의 6대 영역으로 나눈 것입니다.


(7) 메타 영역 - 인생 그 자체에 대한 고민

자유의 육각형은 총 여섯 가지 영역이지만, 그 여섯 가지 영역을 관장하는 영역이 따로 있습니다. 저는 메타 영역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삶의 가치관에 대한 고민은 정서적인 자유나 인지적인 자유의 영역과는 결이 다릅니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고민하고, 계획이나 전략을 세우는 일은 자유의 육각형 바깥에서 육각형 자체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각자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계실 겁니다. 각자 인생 목표가 있을 거고 계획이나 전략을 세우는 일에도 관심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인생 목표라거나 일생일대의 과제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겠죠? '사는 게 사는 거지 뭐' 하신다거나, 그런 목표를 세워봤자 어차피 그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방향도 모호하고 구체적인 모습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본 시리즈의 여정 편에서 다룬 것처럼, 여러 변화의 계기와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가치관을 찾아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는데, 그 실천 방법 중 한 가지는 글쓰기였습니다.


특히 일기나 에세이처럼 성찰적인 글쓰기는 삶의 의미, 목적, 목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려면, 그와 대화를 나누어봐야 합니다. 편지나 카톡도 포함한다면, 소통이라는 범주에 모두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의 욕구나 욕망에 대해 파악하려면 소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난여름 퇴사를 고민하던 때가 문득 떠오릅니다. 나로서 살아갈 방법을 탐색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어떻게 탐색해야 하는지는 뚜렷한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러다 결국 퇴사를 지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세 가지 수칙을 만들었습니다.


1. 저널링: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 -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등 
2. 루틴: 일관되고 지속성 있는 생활 패턴 만들기 - 운동, 글쓰기, 식사 등 
3. 네트워킹: 교류하기 - 모임, 특히 작가나 글쓰기 모임


글쓰기 모임은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글을 많이 썼고, 매주 하루나 이틀씩 정기적으로 모임에 나갔고, 모임에서 사람들과 함께 글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글쓰기 모임 덕분에 꾸준히 글 쓰고 교류하면서, 인생의 다음 챕터를 새롭게 열어젖힐 동력과 비전을 얻은 것 같습니다. 글쓰기 모임은 최근 겪은 인생의 변화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변곡점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글쓰기는 나와의 대화

글쓰기 모임뿐만 아니라 휴직 기간 중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썼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마치 누군가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남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가 쓴 글을 읽음으로써 그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쓴 글을 읽음으로써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혹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글쓰기 코너를 구경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곳에 가서 여러 책의 제목을 살펴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 키워드는 '치유', '위로', '상처', '회복'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한 단어의 목적어는 주로 '나', '자신',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과거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

왜 유독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위안을 강조하는 걸까요? 물론 글쓰기가 주는 위로의 힘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 위로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와 나 자신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대해서 풀어쓰는 것은 그 시간을 살아간 내가 지금의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고, 동시에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때의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는 것입니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고 위로받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회고적인 글쓰기는 오늘의 나와 과거의 내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입니다.


오늘의 나와 고민 이야기

나에 대한 글쓰기 소재가 과거의 상처에 제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 자주 하는 고민에 대해서 쓰는 건 어떨까요? 주변에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거나,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어렵거나, 고민이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글쓰기만으로 고민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혼자 끙끙 앓느라 답답했던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가득한 고민을 지면에 남김으로써, 제삼자가 되어서 상황을 바라보는 느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뜻밖의 해결책이 보이기도 합니다. 글쓰기에는 위로나 회복뿐만이 아니라, 코칭의 기능도 있네요.


내일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스스로와 고민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나와 나 자신이 서로 친밀해지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가진 효능 중에 가장 유익한 것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간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그려보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다 보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명확해집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휘발되지만 글로 쓰는 것은 지면에 남습니다. 그게 종이든 화면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손에 닿지 않을 것만 같던 미래가 어느새 솜사탕처럼 내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이런 게 나 자신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마음이구나 하면서, 솜사탕처럼 달콤한 미래를 메모장에 그려봅니다.


자신과의 심층 인터뷰

다만,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심리적인 저항을 이겨내고 용기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남들의 기대, 그동안 투자해 온 것들, 혹은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적인 제약들, 그러한 장애물을 걷어내는 분별력도 필요합니다. 


내 영혼을 둘러싼 여러 껍데기를 벗겨내다 보면, 그 영혼이 갈망하는 목소리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의 가치관이자 삶의 목표, 그리고 비전일 것입니다. 껍데기를 벗겨내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스스로 묻고 답해야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자유'라는 핵심 가치를 찾아내기까지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많은 일들이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새처럼 이곳저곳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라, 나를 단련하고 개발함으로써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는 자유였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서는 자기계발에 더욱 힘쓰기 시작했고, 글로써 생각을 더욱 정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자유는 정확히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그러한 자유를 이룰 수 있는지, 애당초 나는 왜 그런 자유를 갈망하는지?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거듭할수록, 내면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선명해져 갑니다. 그 과정에서 '남들이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면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혼자 남게 되더라도 어떤 가치를 좇고 싶은지 반문해보아야 합니다. 불안, 두려움, 인정욕구 등. 한 꺼풀 두 꺼풀 벗겨내다 보면 진심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해지면 그다음 일은 비교적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게 위한 전략, 필요한 환경, 실행할 루틴, 목적에 대한 방해물을 판별해 내는 능력,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모든 것들. 비로소 삶의 나침반이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만 같습니다. 나의 삶은 더 이상 방황하거나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명확하고, 원하는 바가 뚜렷하고, 어떻게 실행할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지능이 높아지고 억대 연봉을 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이토록 건강했던 적도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이토록 사랑스러웠던 적도 없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에서는 부모의 기대라든지, 사회적 평판이라든지, 결혼시장에서의 매력도라든지, 남들이 정한 기준들을 따라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 땐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행복감. 이러한 자유를 얻게 되어서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무한 글쓰기

달리기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달리면 숨이 찹니다. 그리고 다리를 구르느라 힘이 듭니다. 호흡과 피로감은 금세 고통으로 변합니다. 숨이 점점 더 가빠지고 땀이 흐릅니다. 이런 고통과 불쾌감은 달리기를 꺼리게 만듭니다. 저는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불가피할 때에만 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각할 것 같을 때, 횡단보도 신호가 얼마 안 남았을 때, 혹은 버스나 지하철이 다가올 때처럼요.


그런데 달리기를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달릴 때의 고통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달리는 데에 드는 힘은 더욱 버겁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달리기의 고통을 자주 마주하다 보면, 점점 더 그 고통에 무뎌집니다. 그와 동시에 전신의 근육이나 폐활량이 개선되면서, 달리기가 수월해집니다. 달릴 수 있는 거리나 속도를 조금씩 꾸준히 늘리다 보면, 어느 순간 오래 달리기도 수월해집니다.


글쓰기도 달리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처음엔 한 줄 두 줄 쓰기가 어렵지만, 매일 조금이라도 쓰다 보면 점점 더 많이 쓸 수 있습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내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알게 되고, 나와 더욱 깊이 있게 교류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더욱 많은 것들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글감이 무한정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마치 오래 달리기를 하듯이 말이죠.


직장을 쉬는 동안 글쓰기 페이스를 많이 올린 방법들이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 짧은 메모, 그리고 일기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글쓰기 경험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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