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 오창읍 후기리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이 고향 생활의 한 가지 좋은 점은 익숙한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저녁 일 하러 올라가면 야옹거리며 다가오는 김고양이나 헬스장에서 지겹게 반복되는 이름 모를 댄스가요나 오창프라자 근처 라이라이 반점의 간짜장 뭐 그런거.
그동안 여기서의 생활이 무지 재미있는 것처럼 써놓았지만 실제로는 주말이고 뭐고 없이 그날이 그날인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심심할 때가 훨씬 많다. 아니 거의 매일 심심한 것 같다. 누구 만날 사람도 마땅치 않지 그나마도 만날라믄 큰맘먹고 시내 나가야 되지 근데 또 나가는게 일이라서 잘 안나가게 되지 뭐 그러다보니 사람이 고파진다. 가족 빼고는 얼굴 마주보며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 원. 이러다보니 이 근처 사는 사람 하나 생겼으면 참 좋겠지 싶다. 김고양이나 댄스가요나 간짜장처럼 익숙한, 그런 사람.
작년 어느날엔가 운동 끝나고 캔커피를 하나 사먹으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캔커피를 하나 골라가지고 계산대에 내려놨는데 편의점 아줌마가 이거 1+1이라고 하나 더 가져오란다. 이게 웬 횡재냐 싶었지마는 그날따라 왠지 커피 두 캔을 혼자 다 먹기는 좀 꺼림칙한 거다. 그래서 아줌마한테 이거 하나 드리면 드실래요? 했다. 뭐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어차피 덤으로 얻은 건데 두 개 다 먹기도 그렇고 하나 드리지 뭐, 그 정도 의 생각일까? 여튼 별 생각 없이 그랬는데, 주면 고맙지. 라네. 하나 주고 나왔더니 괜히 기분 좋더라. 근데 커피가 뭐더라 더치커피인가 그랬는데 맛 더럽게 없길래 좀 미안하기도 하고 누구 안줬더라도 혼자 다 먹진 않았겠다 싶어서 웃음도 나고.
다음 날에 그 편의점에 또 들러서 라이터를 하나 샀는데 200원 깎아줬다. 그 다음에 버스카드를 사러 갔을 때는 버스카드 없다 그러더니 여기저기 한참을 뒤져서 누가 놓고 간 주인 없는 버스카드를 공짜로 줬다. 그 다음에는 내가 음료수와 함께 새해 인사를 드렸던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자일리톨 두 통을 얻었고, 농담 몇 마디 나누고. 그렇게, 조금은 익숙한 사람이 생겼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편의점 아줌마지만 매일 시시한 얘기 한 두 마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겨 좋다. 날이 춥다는 둥, 뭐 왜 밥 안먹고 라면 같은거 먹냐는 둥, 뭐 그런 되게 시시한 얘기. 접때는 나보고 취업 준비할 나이 아니냐고 그러길래, 곧 해야 될 것 같은디 어째 잘 모르겄다고, 그랬더니 자기 둘째 아들은 삼성에 취업했다며 자랑을 하시길래 어이구 잘됐다 부럽다 맞장구 쳤다. 너도 잘 될거 아녀? 하셔서 어유 모르죠 뭐 입에 풀칠은 하겄죠? 했더니 야 입에 풀칠만 하면서 살면 안되는 거여. 하신다. 첫째 아들은 잘 다니던 회사 때려 치고 고향 내려와 있다면서.
오늘은 글쎄, 나보고 여기 사는 거냐고 묻길래, 방학이라 내려와 있다고, 곧 서울 올라갈 거라고, 나 볼 날도 인제 얼마 안 남았다고 그랬더니 세상에 보고 싶어서 으뜩햐? 하신다. 으뜩하긴 뭘 으뜩햐 참어야지. 라고 응수한 나는, 빈 말일게 뻔한 그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