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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호 Apr 22. 2019

편의점 노부부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단골 편의점의 사장님은 노부부다. 아주 깐깐한 할머니와 머리가 벗겨진 할아버지가 함께 편의점을 운영한다. 당연히 알바도 쓰는데, 내가 가는 시간에는 보통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시고 아주 늦은 밤-새벽에만 알바를 쓰는 것 같다.

편의점 할머니가 깐깐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머리스타일이다. 대충 보아 칠십쯤 되어보이는 할머니는 항상 아주 촘촘한 빗으로 빗은 것 같은 올백 머리(?)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 머리가 흐트러진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두번째는 봉지값이다. 이 동네에 와서 처음으로 이 편의점에 들렀을때 버릇처럼 계산 후에 봉지에 담아달라는 부탁을 드렸더니 계산대에 붙어있는 '봉투값 20원'이라는 빨간 글귀를 가리키시며 자꾸 공짜로 주면 그게 당연한 건 줄 안다는 일침을 날리셨다. 그 뒤로 계산 전에 봉지 여부를 미리 말씀드리는 버릇이 생겼다. 세번째로는 최근에 있었던 에피소드인데, 잃어버린 지갑을 그 편의점에서 찾아주신 적이 있었다. 하루종일 찾아 헤맸던 지갑을 찾아서 흥분해 있는 내게 할머니께서 이 지갑 주인이 본인 맞냐고 세상에 몇번이나 물어보시던지.. 주민등록번호와 본적까지 전부 말하고, 민증 사진과 내 얼굴을 수차례 대조하고 나서야 나에게 지갑을 돌려주셨다. 어지간히 깐깐하고 정정하고 건강한 할머니다.

반면에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성격이 영 반대인 모양이다. 말이 많고 빠르고 말의 맺고 끊음이 확실한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느리고 말끝을 흐리신다. 흐트러짐 없는 할머니의 머리스타일과 달리, 할아버지의 벗겨진 머리를 간신히 덮은 몇가닥의 머리카락은 항상 위태롭다. 할머니한테 구박받는 것도 여러 번 봤다. 어르신께 실례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해 보이는 그런 사람.. 그런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나이 차이가 최소 사십오년은 될 법한 내게 단 한번도 말을 놓은 적이 없으시다. (할머니는 나를 본지 1초만에 말 놓으셨다...)

이 특별할 것 없는 편의점 노부부를 알게 된지 반 년째, 꽤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

며칠 전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카운터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안계시기에 잠시 자리를 비우셨나 하고 편의점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열린 창고 문 사이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헐겁게 안고 할머니 등을 토닥토닥하고 계셨다. 보면 안될 걸 본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랑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내가 할아버지였으면 화들짝 놀라서 할머니를 밀쳤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씩 웃으시더니 그냥 하던 그대로 할머니 등을 토닥이셨다.

계산대로 돌아오신 할아버지 앞에 몇가지 물건을 내려놓고 카드를 내미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슥 보더니 젊은 사람들 보기에 이상해 보입니까, 하신다. 그래서 아뇨 전혀 안 그렇습니다, 하니까 내가 할머니를 화나게 한 게 하나 있어서 달래줄라꼬 한깁니다, 하신다. 그리고는 민망하게 웃으셨다. 보기 좋으세요, 했더니 그렇습니까, 하더니 또 민망한 듯 허허허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안아주던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보기 좋다고 말씀드렸지만 상상하면 사실 좀 민망한데, 그래도 그 어수룩한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좀 멋있어 보였다. 화를 달래주는 방법으로 토닥토닥을 택한 것도. 품에 꽉 안는 것이 남사스러워서 헐겁게 안고 있지만 누가 본다고 해서 그 손을 떨쳐내지는 않는 것도.


근데 할머니 화는 풀렸을까 궁금하다.

깐깐한 할머니 화날 일도 많을텐데, 할아버지의 그 토닥토닥으로 할머니 화가 풀린 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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