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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호 Apr 22. 2019

동네다움

지방에서 나고 자라 수도권에 살게 된 지 9년이 지났다. 전세금 때문에, 월세 때문에, 통학 때문에, 통근 때문에 이사를 몇 번 했다. 살아본 동네를 세어 보니 손 하나론 부족하다.


어디에나 있을, 소박하고 평범한 동네들이었다. 어디는 동네 전체를 굽어 보는 뒷산이 고즈넉했고 또 어디엔 말수가 적은 과일가게 할아버지가 비가오나 눈이오나 자리를 지켰고 또 어딘가의 단골 카페는 그저 그런 커피 맛을 기가 막힌 핫도그 맛으로 때우곤 했다. 포털사이트에 그 동네들을 검색하면 아파트 시세와 맛집 리스트가 제일 위로 떠오른다. 뒷산과 과일가게 할아버지와 그저 그런 커피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내가 살았던 동네의 아파트 시세를 짐작도 하지 못한다. 내가 살았던 동네의 아파트 시세가 내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듯이, 뒷산과 과일가게 할아버지와 그저 그런 커피에 대한 나의 기억 역시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억일 것이다. 동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대체로 나에게만 의미가 있다.


사전적 의미의 동네는 ‘자기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정한 공간’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혹은  ‘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 (우리말샘)이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동심원이 동네를 만든다. 어디에나 있을 소박하고 평범한 동네에서, 각자에게만 의미를 지니는, 그래서 남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 동심원들을 동네다움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동네의 조각들은, 자기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바로 그 동심원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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