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행위를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이제 겨우 1년. 글을 쓸 줄을 몰라 하얀 백지에 '나는 -'으로 시작해서 두어 줄 겨우 끄적이다 마는 나였다. 애초에 글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5학년 방학숙제로 쓴 일기가 그 마지막이었으니까.
오랜 연인이 있었다. 특별하다 여긴 그때의 우리는 결코 특별하지 않았고 헤어진 여느 연인들처럼 돌아섰다. 그 후유증은 굉장했다. 무너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건 그때였던 것 같다. 마치 죽음의 간접체험을 한 느낌. 그때 우연히 집은 책 한 권이 나를 살렸다. 작은 책 한 권에서 생명력을 얻었다. 새 삶을 얻었다.
읽는 것이 좋아졌다. 읽고, 울고, 다시 읽고 또 울기를 반복했다. 나는 내가 눈물이 그리 많은 사람인지 그때 알았다. 그 책의 작가는 실컷 울고 무작정 적었단다. 그게 무엇이든 떠오르는 것을 잔뜩 적고 길거리 전봇대에 보이는 대로 붙여두었단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모습에 또 한 번 펑펑 울었단다.
흉내 내 보기로 했다. 글은 아무나 쓰는 줄 아느냐는데 그 아무나 가 되어보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적었다. 마치 중2병에 걸린 듯 오글거리는 것들을 써보기도 하고 누군가 쓴 것을 인용해 적어보기도 했다. 출퇴근 지하철에 앉아 임의의 단어 한 가지를 정해놓고 그것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적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노트에 감추고만 있자니 속으로 삼키는 것 같아 답답했다. 어디든 털어놓고 싶어 SNS를 시작했다.
작은 울부짖음이 익숙한 일상이 되었을 쯤, 나의 글에 한 댓글이 적혔다. 그런 관심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또한 잘 써낸 글도 아니었는데 거기엔 단 두 글자만 있었다. '아파'. 그것에서 그날의 작가를 떠올렸다. 자신의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사람을 보고 울던 사람. 또 울어버렸다. 글쓰기가 좋아진 건 그때부터였다.
시간이 흘러 감정도 추슬러지고 핼쑥했던 얼굴에도 살이 좀 붙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적었다. 이제는 지난 사랑이 아닌 나를 적기 시작했고 가치관이 많이도 바뀌었다.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의 출간을 버킷리스트에 담기도 했다. 여전히 쓰는 행위를 하며 많이 우울해하지만 그때의 감정이 즐겁다. 즐겁게 살고 싶은, 즐거울 것 없던 내가 즐거운 것을 찾았다. 더 좋은 글을 잘 쓰고 읽히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단 한 사람의 공감을 사 감사히 울고 싶다. 꾸준하게 무너지고 그것에 덤덤해지며 좀 더 단단해질 나를 적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