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영화제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미루어졌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무관객으로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상상하게 된 얼굴은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의 것이었다. 단 며칠 간의 축제를 위해 몇 달을 쏟아붓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회사와 다른 부분이라면 방점이 준비에 찍혀있다는 점이다. 진짜 무대는 여름 혹은 가을에 있을 잠깐이고, 무대 뒤에서 몇달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곳에는 있다. 영화제가 아니라도 축제의 성격을 띤 모든 것이 그렇다. 영화를 극장에 내보내는 업무를 하던 때에 가장 놀라웠던 건 영화가 스크린에 걸려있는 기간이 아주 짧다는 사실이었다. 스태프들에게는 한 두 해, 감독에게는 십 년일 수도 있는 인고의 시간을 딛고 세상에 나온 작품은 운이 좋아야 한 달 남짓인 상영기간 동안 '쇼부'를 봐야했다. 이제는 제한기간이 없는 OTT 플랫폼으로도 개봉이 가능하다지만 영화산업의 미래에 대한 글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그렇다면 영화제를 준비하는 기간도 영화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예를 들면 그린데이 콘서트가 8월 1일부터 2일까지 열리는데 밴드가 리허설을 하고 무대를 설치하고 홍보를 하는 몇 달을 진짜 공연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과도 같다. 회사에서 멍을 때릴 때면 준비하는 인생과 진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인생인 것과 아닌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기간이 영화제가 아닌 것처럼. 내 인생은 몇 할의 준비와 몇 할의 축제로 이루어져 있는가. 아무리 양보를 해도 회사에 앉아있는 시간을 축제라 부르긴 어렵다. 퇴근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그에 비하면 조금은 더 인생에 가깝다. 행복감이나 즐거움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은 의심의 여지 없이 진짜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엄청 드물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대한 진짜 인생의 지분을 늘려놓아야 죽을 때 마음이 편할 텐데 말이다. 죽을 때 마음 편한 사람이 되는 건 아주 중요한 목표인데, 아직은 한참 멀었다. 일에 투자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만큼 나머지는 고정값으로 두고 일의 행복도를 높여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반복되는 사무직의 일상을 축제스럽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희박하다. 지금까지 생각해낸 최선의 방법은 예쁜 옷 입고 출근하기 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는 순간에는 정말로 "이게 인생이지! 캬!"라는 탄성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오기까지는 최소 일 년이 남았다. 일이라는 것 또한 9할 준비, 1할 축제의 법칙을 받는 것인가. 어쩌면 99대 1일지도.
지루함을 견디기 힘든 뇌 구조를 만들어놓고 인생 99대 1의 법칙을 적용하다니 신은 짖궂다. 다행인 것은 자유 의지로 그 비율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깨어있는 시간을 늘여가는 사람들. 그 중 하나가 되고 싶어 노력을 해보지만 하루 중 날씨가 제일 아름다운 때에 건물 안에 앉아있어야 하는 패턴으로는 역시 무리다. 회사원이 아니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깨어있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다. 조직생활의 어려움이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이유일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것이 가장 아쉽다. 자꾸만 아쉬운 것들에 대해 글쓰고 싶지는 않은데 오늘도 그렇게 되었다. 오늘은 일의 슬픔에 가까운 글을 썼지만 다음번엔 일의 기쁨에 관해 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인생이 50대 50일 수 없다면 나의 감상이라도 50대 50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