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로맨스는 그만-웹툰계, 여성 서사의 바람이 불다

by 동그라미

*본 기사는 지속가능 바람 웹진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모든 미디어가 그렇듯, 웹툰에서도 ‘여성’의 이야기는 로맨스에서만 볼 수 있었다.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과 한없이 여린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여성이 제작하고, 여성이 소비하는 서사였음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을 만나 ‘신분 상승’을 하거나, 그런 여자 주인공을 질투하며 교묘하게 괴롭히는 여성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콘텐츠가 발전하면서 점점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했음에도 결국 로맨스라는 큰 틀은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웹툰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의 틀을 깨고 사랑을 하지 않는, 세상에 저항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 것이다. 2017년에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담은 <며느라기>, 여성이 겪는 가정 폭력을 담은 <단지> 등이, 2018년에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심청전>을 해석한 <그녀의 심청>과 여성의 일상과 노동을 담은 <어쿠스틱 라이프>가, 2019년에는 여성국극을 담은 <정년이>가 오늘의 우리 만화 시상식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최근 웹툰계에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년이 웹툰 캡처 / 네이버 웹툰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웹툰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정년이>이다. 정년이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여성 국악인들이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든 역할을 맡아 연기했던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이다. 주인공인 정년이가 국극단에 들어가 배우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연기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성국극을 소재로 하기에 웹툰의 주˙조연 대부분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웹툰 내에서 국극단의 단원들은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더 멋진 배역을 맡기 위해 서로를 견제한다. 기존의 웹툰에서 여성 간 경쟁이 남성을 사이에 둔 관계로 한정되었음에 반해, <정년이>는 사랑이 아닌 자신의 야망을 위해 경쟁하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겟백 웹툰 캡처 / 네이버 웹툰


보육원에서 동생을 질투해 몰래 대신해서 부잣집으로 입양 간 쌍둥이 언니 은정과 뒤바뀐 운명으로 조직폭력배에게 입양된 쌍둥이 동생 다정의 이야기를 다룬 <겟백> 역시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연속이다. 조직폭력배 아래에서 자라 천재적인 미술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싸움만 하고 자란 다정, 그런 다정을 안쓰럽게 여기며 원하는 대로 살도록 돕는 조직의 중간보스 나연, 다정의 자리를 뺏어 얻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은정 등이다. 이렇듯 기존에는 남성 캐릭터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누아르, 액션 장르에서도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웹툰 캡처 / 네이버 웹툰


외에도 기존의 로맨스 판타지물의 클리셰를 깨부순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도 주목할 만하다.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는 주인공인 ‘악녀’ 메데이아가 왕비의 자리를 뺏어간 ‘순수하고 여린’ 프시케를 원망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도중 두 여주인공의 몸이 바뀌며 시작한다. 클리셰적인 로맨스 판타지라면 사실은 순수해 보이기만 했던 프시케가 순진한 척 왕을 유혹하는 악역이고, 메데이아는 당당한 매력의 여자주인공이라는 전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웹툰은 두 여성의 싸움이 아닌 협력으로 나아간다. 메데이아의 최종 목표가 왕임을 알고 미리 메데이아를 나락으로 빠뜨린 것도, 이를 목적으로 프시케에게 접근했다가 이용 가치가 떨어지자 프시케를 죽이려 한 것도 모두 황태자 이아로스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프시케와 메데이아는 함께 손을 잡고 이아로스에게 복수하기 시작한다.


(화장 지워주는 남자 웹툰 캡처 / 네이버 웹툰)


이렇게 웹툰 내에서는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기기 시작했다.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에서는 메이크업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을 웹툰에 녹여냈다. 해당 웹툰은 주인공인 예슬이 메이크업 경연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는 10대라는 어린 나이에도 예쁨과 섹시함을 추구하는 미미가 인터넷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아름다움의 추구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작중 “신기한 경연이네요. 나이 많은 쪽은 어려보이려 하고, 어린 쪽은 오히려 성숙해 보이려 하고”라는 대사는 섹시함을 답습하는 아이들과 아이 같은 모습을 추구하는 성인이라는 모순을 그대로 담아낸다. 또한 예뻐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던 희원은 주인공인 예슬을 만나면서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스러움’과 그의 앞에 놓인 코르셋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에 희원은 경연에서 머리를 자르고, 화장품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작중에서는 메이크업 쇼의 무대지만 이는 결국 작가가 독자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다.


외에도 성형이라는 키워드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껍데기>나 며느리의 일상을 보여주며 한국사회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며느라기> 등도 페미니즘 이슈로 사회에 떠오른 여러 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여성 서사 웹툰이다.


비교적 제작 기간도 짧고, 신규 작가의 유입이 많은 웹툰은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역동적이다. 매달, 매주 새로운 작품이 연재되며, 공모전, 아마추어 연재 사이트, 인스타그램 등 우리는 다양한 경로로 웹툰을 접한다. 그렇기에 웹툰은 단연 타 콘텐츠보다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반영한다. 누구보다 시대의 흐름에 빠르게 반응하는 콘텐츠인 웹툰에 여성 서사가 증가하고 있다는 말은 즉,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화했음 나타낸다. 여성의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커졌고, 수요가 증가했으며 더 많은 사람이 여성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 웹툰 작가는 본인의 웹툰 후기에서 “요즘 특히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는 경험을 많이 한다”며, “남자 캐릭터는 원래도 워낙 많은 캐릭터가 존재해서 그런지 좀 더 안전한 느낌”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기존의 다양한 여성 캐릭터 부재에서 나오는 괴리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 단순히 수동적이고 착하기만 한 여성이 아닌, 욕망하고, 싸우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가.


지금 웹툰계에서 시작한 이 바람이 이곳에서 멈추지 않고 강한 돌풍이 되어 영화, 드라마, 문학 등 다양한 미디어까지 불어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접하는 우리의 삶도 더욱 역동적이어지기를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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