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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중년의 네 자매가 누린 파라다이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국가로부터 환급받은 돈으로 여행

by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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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설날이다. 기혼 여자들에게 설날은 기쁨보다는 연중 최대의 심신 중노동을 치르는 날이기도 했다. 오죽해야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도 생겼을까? 하지만 최근에는 명절의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없애는 가정도 늘고 있다. 친정은 제사를 없앴고, 시댁은 부모님 기일을 합치고, 설, 추석 명절의 제사는 그대로 지낸다.

친정에서 제사를 없애고 나니, 출가외인이라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제사를 없앤 첫 해 설날에 친정 네 자매들은 ‘주부의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모두가 맞벌이 주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오 육십 대 자매들은 설날 연휴에 가까운 곳에 여행을 떠나, 2박 3일을 호화롭게 지냈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자매들은 각자 시댁에서 설 명절을 지내고, 중간 지점에 모였다.


우리들에게 호화로움이래야 식당에서 차려준 밥을 먹고, 산책하고, 뜨끈한 호텔 온돌방에서 낮잠도 즐기는 것이었다. 주부들에게 명절은 늘 가족들을 대접하고 집안 일로 허리가 휘는 시간이었던 걸 감안하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었다.


우리는 묵었던 호텔은 수수한 곳이었지만, 삶의 노곤함을 위로받은 파라다이스였다. 음식준비할 일도 없고, 설거지며 집 안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고 일어나서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에는 노래방에 가서 고성방가에 아무 몸짓이나 발광하듯 흔들었다. 털어내야 할 그 무엇이 그리도 많았을까?


호텔 온돌방에 나란히 누워서 했던 옛날이야기를 또 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들은 “그때는 왜 그랬을까?”라며

포용과 위로, 사과의 말을 나누기도 했다. 네 자매는 평균 60의 나이에 몸의 여기저기에 조금씩은 적신호가 오는 것을 보이며 서로를 걱정하기도 했다.

평소 친정에서의 명절은 늘 주방에서 서성이고 돌아서고 나면 또 식사를 준비하고, 하루나 이틀을 묵다가 각자 사는 곳으로 출발하기 바빴다.

하지만 호텔에 묵을 때는 집안일을 하는 시간에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묻고, 몸도 쉬고 마음도 쉬었다.

엄마는 허리며 다리, 손가락이 휘어지도록 제사상을 마련했지만, 딸들은 아직은 중년이었을 때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호텔에서의 휴식은 우리의 자발적인 휴가는 아니었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분이 나와서 그 돈을 활용할 방안으로 호텔의 휴식이 마련된 것이다. 자매들은 이런 시간이 얼마나 좋으냐며, 매년 한 번 정도는 우리도 이런 호사를 누리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주부들은 가족들 식사를 위해 365일 휴일이 없고, 명절이면 강도 높은 가사노동을 하지만 그걸 누구나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여성들의 불합리성을 제기하면 페미니즘이라며 욕을 듣는 세상이다. 그저 ‘희생의 어머니상’에 손뼉을 쳐주고 ‘어머니는 원래 그래’라는 인식이 정상적으로 통했다. 어머니는 원래 그런 게 아니다.


설명절을 호텔방에서 보내며 든 생각이 한국에만 주부들에게 명절증후군이 있었듯이, 주부들을 위한 국가의 공식적인 휴일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굳이 상상 속에서만 행복을 찾을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주부들이 웃을 수 있기를. 모든 가족이 각자 분담해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한다면 주부도 온전하게 쉴 시간이 있다. 꼭 호텔에 가야만 주부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주부들이 진짜 원하는 건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쉴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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