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처음으로 경제에도 관심
남편이 독서에 입문한 지 4개월이 지났다. 2024년 10월 중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부터 읽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독서하는 시간에 습관이 붙는 것 같았다. 식사 후, 자발적으로 설거지도 한다. 그리고 곧장 독서책상에 앉는다. TV 속에 온 영혼이 들어갔던 사람이 이제는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새해 들어서 월 3 권은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2월에만 이미 12권을 읽었다. 목표치를 훨씬 넘어섰다. 여기에는 몇 가지가 작용하는 것 같다. 독서의 재미를 붙이면서 계속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거고, 나의 응원에 힘을 얻어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든 것 같다. 또한 아이들도 자신의 변하는 모습에 긍정의 말을 해 주니까 가족의 칭찬으로 더 읽는 것 같았다. 남자들은 단순하니까 그 단순함을 잘 활용하면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동안은 어쩌면 나의 복잡함으로 남편을 대해서 더 짜증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할 때도 책을 들고 가고, 여행을 갈 때도 책을 넣고 간다. 화장실 휴지걸이 아래 책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도 책을 꽂아 놓았다. 심지어 산에 맨발걷기를 갈 때도 책을 넣고 가서, 잠시 앉아있는 간식 타임에도 책을 읽었다. 술자리도 이제는 주 1~2회만 가지는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변해갈 수도 있구나 싶다. 역시 뭐든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야 변화되는 것 같다.
독서에 재미를 붙이면서 일상에서 사소한 언행들을 통해 그동안의 의식체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았다. 고명환작가가 추천한 책과 유튜브를 보더니, 결혼 후 처음으로 경제에 관심을 가졌다. 책을 읽으면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내용에서 경제 관련, 돈을 벌 수 있는 유튜브를 봤다. 그 전에는 자연인, 골프, 정치 관련 유튜브만 봤다.
평소에 남편은 '돈이 없다. 우리는 가진 것도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경제적 부를 위해 어떤 관심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모임이나 취미생활이 목적이요 삶의 낙이었다. 나는 중앙일간지와 경제지를 구독했지만, 남편은 신문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현재 우리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부자는 아니지만, 빈곤하다는 생각도 안 해봤다. 신문에서 해마다 전국 가구당 자산현황 등을 보면서 또는 내가 피부로 느끼는 삶의 질을 생각하면 평범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골프를 치는 친구들은 대부분 벤츠나 제네시스를 타고 다니는데, 자신은 소나타라서 쪽 팔린단다. 우리집은 직장인 두 명과 시간이 자유로운 내가 차 두 대를 사용하는데 나는 별로 불만이 없다. 경제적 실권을 내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 대비도 해야 했기에 굳이 고급차를 살 형편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만일 남편처럼 건강했다면, 삶에 걸림돌이 없이 내 삶에서 경제적 부가 목적이었다면 모든 역량과 관심을 경제에 두고 과감한 투자 등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분야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것 같다.
독서 전의 남편은 평소에 퇴직 후에 자연인으로 살 거라며 늘 자연인 TV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즐겨봤다. 현재 직장생활이 자기에게 맞지 않다며 그저 약초를 재배하며 자연인으로 사는 것을 꿈꿔왔다. 그것도 사업차원의 약초재배가 아니라, 소일거리 차원으로. 그래서 땅도 몇 번 보러 다녔다.
또 평소에 즐겨보는 유튜브는 정치 관련 내용, 또는 골프였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골프채로 골프 연습을 자주 했는데, 거실을 지나다닐 때 약간은 긴장을 하면서 다녀야 했다. 어느 날은 강아지가 골프채에 맞기도 했는데, 그 뒤로는 나무 막대기를 만들어서 골프 연습을 했다.
요즘은 골프, 자연인, 정치 유튜브도 보지 않고, 돈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은 그렇게 책을 많이 봤으면서 왜 돈을 많이 못 벌었어?"
남편은 경제 관련 책을 많이 읽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 같았다.
"난 그동안 읽은 책들이 교육, 건강, 문학, 심리, 종교에 관한 책들이었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급했으니까."
나는 그동안 10여 년을 제도권 공부와 각종 자격과증 심리학 등의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택했다. 프리랜서 기자, 독서논술 공부방, 지사 운영을 하면서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우리집 생활비의 현재 수준을 유지한 것은 내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편이 조금만 부동산이나 경제에 관해 관심이 있었다면 우리의 경제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50대 후반이지만 경제는 생물처럼 시대흐름에 따라 변화기에 앞으로 남은 삶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면 또 어떤 기회가 올지 아무도 모른다.
남편에게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노트에 기록하면서 읽으라고 했더니,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독서 책상에는 노트 한 권이 놓여 있는데, 남편과 내가 나란히 앉아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문장이 있으면 그 노트에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노트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내 의견을 남편에게 얘기하면 내 말이 수용되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독서관련해서는 내 말을 수긍하고 있다.
또한 딸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적극적으로 권유를 하고 있다. 딸들이 어렸을 때는 정말 책을 많이 읽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핸드폰과 더 친했다. 다행히 딸들도 아빠의 독서하는 모습을 보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남편이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을 받은 책인 고명환작가의 '고전이 답했다.'를 친구와 딸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나도 읽었기에 그 책을 다 같이 가족 독서 토의를 하자고 하니, 남편과 딸들은 약간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했다. 독서 토의를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아이들 독서논술 수업하듯이 토의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각자가 읽은 소감, 문장에 관해 얘기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거지."
남편이 내게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책 읽은 내용을 차 안에서 얘기를 한다든가, 식탁에서도 한 두 마디를 한다. 대화할 소재가 생긴 것이다. 또 나의 언행에 대해 예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말 위주였다면 이제는 내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
어젯밤에는 뒷베란다에 재활용 분리수거통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늦게 들어와 정신없이 저녁을 준비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저녁을 먼저 먹은 남편에게 말했다.
"식사 다 했으니까. 재활용 분리수거 좀 하고 와라."
남편은 들은 척도 안 하다가 나중에서야 말을 했다.
"내게 명령조로 얘기해서 기분 나빠서 더 하기 싫다."
남편도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을 했고, 나 역시 나의 말투를 고쳐겠다고 했다.
남편은 요즘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처럼 책상에서 책을 읽는 중에 딸들과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시끄럽다며 책에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집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얘기를 했다. 우리의 대화조차 시끄럽게 들린다는 남편 말이 언짢기보다는 독서에 집중하려고 하는 모습이 오히려 기특? 했다. 어느 날은 나 혼자 집에 있을 때 유튜브를 켜 놓고 있었는데, 집으로 들어온 남편이 유튜브 소리가 시끄럽다고 했다. 그동안 남편이 켜 놓은 tv소리, 유튜브 소리로 인해 가족들이 소음공해에 시달렸다는 건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역시 사람은 상대방 입장이 되어 봐야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하나보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모습일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서 남편의 이런 모습들은 획기적인 모습이다. 이제 막 의식체계에 균열이 시작된 것 같다. 그 균열이 완전히 깨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지도록, 내가 더 낮아지고
응원하려고 한다. 남아 있는 날들의 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서. 독서로 변화되는 한 사람을 응원하기 위해서, 신앙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