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로 '중년의 위기' 극복 중

새해 월 3권 목표에서 8권으로 늘었다

by 데레사
책상.jpg

남편은 이제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가는 것 같았다. 퇴근 후에 소파에 앉으면 티브이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제는 독서책상으로 가 앉는다.

"30여 년을 TV만 보다가 안 보니까 어때?"

" 책을 읽으니까 TV를 안 본다는 걸 의식을 못한다. 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아마도 연속극을 본다든가 뉴스를 보면서 그 내용에 집중해서 봤다기보다는 그냥 TV가 보여주는 스포츠, 가십거리 프로그램 등에 자신을 내 맡긴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데 책을 보면서 내용에 집중하다 보니

책 내용에 흥미를 느끼며 읽는 것 같았다. 요즘은 거의 고명환작가가 추천한 고전소설을 읽는데, 재미있다고 했다. 톨스토이 소설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은 여러 단편 내용들이 있어서 어렵다고 했다.


책을 읽을 때의 뇌의 상태와 TV를 볼 때의 뇌의 상태는 다르다고 한다. 세계적인 인지 심리학자 매리언 울프의 '읽는 뇌'에 따르면 독서를 할 때 뇌의 많은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여러 연구에서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한편 영상을 볼 때는 뇌의 활성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이미 수 십 년간 알코올에 절어있는 남편의 뇌는 알콜성 치매가 시작된 것 같았다. 엊그제는 자동차키는 문 앞에 걸려 있는데 대리를 하고 왔는지 택시를 타고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지하주차장, 아파트 밖에도 차가 보이지 않아서, 술을 마신 장소에 차가 있는지 찾으러 가기도 했다. 완전히 알콜성 치매가 의심되는 남편에게 독서는 어쩌면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안 읽던 중년에게 억지로 읽게 한다고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행히 스스로가 책에 흥미를 붙여가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책은 남편이 읽고 싶은 목록을 적어주면 내가 경남대표도서관에서 5권씩 빌려준다.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에는 내가 추천하는 책을 빌려준다. 한 권 한 권 읽는 재미가 있고 뭔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뿌듯함도 느끼는 것 같았다.

여전히 좋아하는 모임을 하며 골프스크린도 치고, 술도 한 번 마시면 취해서 들어온다. 그동안에는 늘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방치했다. 잔소리가 부부싸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면 5분이 넘어가면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를 남편은 일방적으로 회피했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좀 강하게 얘기했다.


"앞으로 지금처럼 취해서 들어올 거면 정말로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

고 했다. 그 말은 단순히 엄포가 아니라, 내 진심이었다. 이제는 술에 절에 있는 모습을 보는게 한계에 도달했거니와 나도 마음의 힘도 강해졌고, 무엇보다도 남편에게 얘기를 하면 적어도내 말을 객관적으로 알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도 아주 사소한 말을 하다가 내 의도를 잘못 받아들이면서 언쟁이 있었다. 나도 심리공부를 해 오면서 나의 대화방식을 스스로 조금 반성했지만, 남편도 뒷날 아침 사과 문자를 보냈다. 그 다음날 좀 더 이성적인 상태에서 그날의 얘기를 하면서,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날것 그대로의 말로 언성을 높이며 본인 입장만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의 모습을 조금 인지하는 것 같았다.


독서를 통해 사람이 조금 변하려면 최소한 백 권은 읽어야 의식과 사고체계가 변해가고 감정도 달라질 수 있다. 물론 1권을 읽어도 가슴까지 들어오는 문장에서 완전히 변하기도 한다. 남편은 이제 막 독서에 맛 들이는 시점이지만 그래도 사소한 행동하나에서 약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은 식사를 할 때, 책 내용에 대해서 한 두 마디를 언급한다. 나도 그 말에 반응해 최소한의 대화를 이어간다. 예전에는 식탁에서 오직 음식만 바라보고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며 먹기만 했다. 내가 눈을 바라보고 얘기를 하는 건 아이들과 식탁 아래서 우리를 올려다보는 강아지와 눈을 맞추며 얘기를 할 뿐이었다.


작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2025년도의 목표가 월 3 권은 읽겠다고 했다. 술도 주 1 회로 줄이겠다고 했다. 술자리가 거의 주 1~2회로 줄어든 건 맞다. 책은 월 3 권을 더 초과하여 거의 월 8권을 읽는 것 같았다. 퇴근 후에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를 할 때도 있지만, 안 하면 바로 독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알콜성 치매라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가 미끄러지다가 언덕을 바로 앞에 두고 독서라는 푹신한 구조물에 걸려서 멈춘 것 같다. 다행히 독서라는 구조물은 사람을 다치게 하지도 않고, 안전한 곳으로 남편을 환영하는 것 같다. 중년의 독서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 되고, 무미건조한 흙바람만 날리던 중년의 가정에 독서라는 이슬비가 내려서 조금씩 연둣빛 싹이 돋아나는 것 같다. 이 싹이 잘 자라서 화초가 무성한 정원이 되기를, 그 정원에 새가 노래하고 향긋한 꽃내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독서의 향기가 퍼져가길 기대하고 있다.





keyword
이전 05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잘못된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