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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감동시키는 아주 사소한 방법

아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 해 주기

by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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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시댁에서 마늘을 심을 때, 노을이 예쁘서 밀레의 '만종' 그림으로 연출해 봤다. 사진을 보니 거의 비슷했다. 엉덩이에 붙은 건 마늘 심을 때 몸에 붙여놓는 의자다.


'남편이 책을 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나?' 남의 편이었던 사람이 요즘은 나의 편이 되어주는 느낌이다. 한 때는 진지하게 이혼을 생각했던 남편인데, 요즘 같아서는 '이런 모습이라면 살만한 결혼'이란 생각이다. 결혼생활 30년을 살아보니,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을 하기도 한다. 우리처럼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이 변하기도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변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는 법.


얼마 전 남편과 고속도로를 지나던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차 안에서는 외투를 벗고 있었는데,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외투를 입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피부를 얼려버릴 것 같은 추위가 온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다시 외투를 가지러 가지 않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남편도 외투를 입지 않고 티셔츠 차림으로 나갔다.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남편이 호두과자와 망개떡을 사 왔다. 나는 이런 탄수화물 종류를 먹을 때는 꼭 음료가 필요했는데

음료수가 없었다. 고속도로를 갈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차에 물을 챙기는데, 그날따라 물도 없었다.


"물이 없어. 음료수라도 사 와야 되는데"

예전 같으면

"목마르면 당신이 사 와."

이렇게 하는 남편이었다. 날씨가 추워서 다시 나가기도 싫고 귀찮았다.

남편은 약간 추위에 얼어버린 얼굴이었지만, 외투를 입지도 않고 말없이 차에서 바로 나갔다.


조금 있다가 헐레벌떡 차로 돌아온 남편은 또 말없이 음료를 내게 건넸다. 포카리스웨트와 따뜻한 베지밀이었다. 나는 그걸 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무뚝뚝한 남자에게 그런 섬세한 면이 있다는 것, 항상 남의 편 같았던 남편이 이제야 내 편이 되어준 느낌이었다.

평소에 내가 즐겨 마시는 음료들을 사 왔다는 건,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얘기다. 나는 우유를 못 마시는 체질이라 간식용으로 베지밀을 마시곤 했는데 이렇게 추운 날에는 따뜻한 베지밀을 찾곤 했다.


그걸 기억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아도 내게 주었다. 내가 구체적으로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생각하면서' 사 온 것이었다.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로 나는 감동을 받았다. 아이를 쓰다듬듯이 남편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해 주었다. 나의 마음도 전해졌으리라.


어느 날 저녁은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집안일을 하지 못했다. 설거지며 거실이 어질러져 있었는데 아이들도 늦게 들어왔다. 나는 자고 있었는데 밤늦게 남편이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강아지 때문에 안방 문을 열고 자는데, 남편은 그 밤중에 설거지를 하고 거실을 치우는 듯했다. 분명 술이 한 잔 된 상태일 텐데, 설거지 소리,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들었다.


주부들이 집안일이나 설거지를 못 할 때는 단순히 바쁘거나 피곤해서 못 할 때도 있지만, 마음이 쳐져서 못할 때도 있다. 그때는 왜 집안이 이렇냐고 짜증을 내기보다 말없이 치워줄 때, 아내들의 마음도 치유된다.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 싱크대에서 요리한 것을 분주하게 식탁에 나르고 있으니까. 내게 한 마디 던졌다.

"이제 당신도 와서 먹어라."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어차피 나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겠지만, 말 한디로 식사를 준비했던 수고로움이

가슴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물론 최근에 남편의 이런 모습들이 어떤 가정에서는 일상일 수도 있다. 원래 다 그러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보다 각종 모임, 친구들과의 만남, 골프가 더 중요했다. 결혼 생활은 유지했으되, 정서적으로는 이혼한 거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도 소통이 안 되었던 게 가장 힘들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혼을 하지 왜 살았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혼한다고 만사형통이라면 당연히 이혼을 했을 거다. 하지만 인생에는 여러 경우의 수가 또 많다. 51%가 결혼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왔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있다는 것,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역할, 중요한 역할들이 있을 때는 자기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하우스메이트였다.


어떤 아내들에게는 최근 내 남편의 모습이 아주 평범한 가장의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연한 건 아니다. 고마운 일이다. 그녀들은 고마운 일이라는 걸 모를 수 있다. 공기가 있어서 감사함을 모르듯이.

남편의 이런 작은 변화들은 나의 칭찬도 한몫했으리라. 늘 내 기준에 못 미친다고 칭찬은커녕 평생 잔소리만 늘어놓았음을 고개 숙여 고백한다. 하지만 최근에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칭찬을 하니까, 그 칭찬에 힘입어서 남편은 더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나를 감동시켰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남편의 언행들이 내게는 감동이었다. 어찌보면 쓸쓸한 감동이기도 하지만 그 감동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의 에너지와 칭찬으로 남편에게 전해졌다. 독서는 중년의 무미건조한 부부사이를 이어주는에 매개체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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