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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잘못된 착각'

남편이 책을 들고 있는 모습 때문에 시작된 연애

by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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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시골마을의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지금이야 전국에서 몰려올 정도로 명문고등학교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 고등학교는 시골 면 단위의 남녀공학 인문계고등학교였다.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거대한 고목들이 중학교과 고등학교를 분리해주고 있었다. 학교 옆에는 바다를 막은 둑이 있었고, 둑에서 바라본 바다의 작은 섬들과 한가로운 바닷가 마을, 반짝이는 은빛 윤슬들은 사춘기 가슴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학교를 나와 바다로 가려면 반드시 바닷가 숲을 거쳐야 하는데,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은 그 숲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놀이터이자 데이트장소이기도 했다. 친구와 심각한 고민을 나누기도 하는 장소였다.


시골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라 남녀합반이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남학생들은 같은 국민학교 출신이 아니면 잘 몰랐다. 그래도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니면서 같은 반을 했던 남학생들과는 말 그대로 같은 반 친구로 잘 지냈었다. 그중에는 서로 사귀는 친구들도 있었고 만나고 헤어졌다는 소문이 담배연기처럼 돌아다니다 사라지곤 했다. J와는 같은 반이었지만 서로 말을 걸어본 기억도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년이 지난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사귄다는 소문을 들었던 커플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고향에서 결혼식을 한단다. 엄마집에도 갈 겸 해서 고향으로 향했다.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두 번 만나기도 했던, 나의 절친과는 잘 지냈던 친구라 그 친구 결혼식에 갔다. 거의가 아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왔다.


신랑신부의 친구들 피로연은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가 되었다. 여자들은 거의가 결혼을 다 한 상태였고 내가 아직 미혼이었다. 남자들은 아직 결혼을 안 한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편안하게 웃고 떠들었다.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고등학교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다. 더러는 생각보다 아저씨 같은 남자들도 있었지만 모두 반가웠다. 내 옆에는 우연히 J가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은 이미 결혼한 친구가 J와 내게 농담으로 말했다

.

"내년에는 너희 둘이 결혼해랴"

친구의 농담에 우리는 웃으며 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술집으로 2차를 가기 위해 봉고차에 올랐다. 봉고차를 타고 보니 또 J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J의 손에는 두꺼운 건강 서적이 들려 있었다. 나도 건강 서적을 읽고 있던 시기였다. 그 당시 몇 년 전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자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내가 간경화에 대해 너무 몰라서 아버지를 제대로 간호하지 못했나라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 내가 회사에 휴가를 내고, 병동에서 간호를 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책을 읽나 봐?"

"응, 한 번씩 읽는 편이야."

J는 그 당시에 책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했다. 책을 읽는다는 J의 말에 신뢰가 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을 하기도 했고, 늘 모범적인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피어올랐다. 넓은 운동장에서 남녀학생 모두가 교련복을 착용하고 기본 훈련을 하기도 했다. 교련시간에는 각 반 반장들이 소대장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렁찬 큰 소리로 구령을 할 때면 마치 진짜 소대장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당시 대대장은 3학년 학생 회장이었는데,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을 정도였다.


J는 다른 친구들보다 낯설지 않았는데, 나중에사 알고 보니 우리는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2차로 이어진 피로연에서 남자들은 대부분 취기가 올라 있었다. 어떤 친구는 은근히 내게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늘 책을 읽었다는 얘기, 나를 처음 봤을 때 피부가 너무 희어서 도시에서 온 줄 알았다면서 그 시절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남녀합반을 하면서 지냈지만, 남학생들과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


피로연을 1차 2차를 하면서 몇몇 남자들이 내게 연락처를 물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그 당시 한 번씩 노처녀 소리도 들었지만, 피로연에서 만난 남자동창들은 어려 보였고 내 관심밖이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겨울 외투는 세탁을 자주 하지 않아서 일주일 전 입었던 외투를 입고 출근 후, 회사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주머니에 웬 종이쪽지가 있었다. J의 전화번호였다. 그런 전화번호가 있을 때 별로 관심 없으면 휙 버리는데 그 쪽지는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책을 든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의 결혼식에 오면서까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종이쪽지를 붙잡았다.


종이쪽지를 보고도 한 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점심시간에 마침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다. J는 그 당시 인천에 살고 있었는데, 경남에 사는 나와는 거리도 멀었지만 J의 회사에 전화를 했다. J는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 때 술이 좀 취한 상태로 내 호주머니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서 넣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로부터 장거리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핑크빛 편지도 주고받곤 했다. 1년 후 피로연에서 친구가 농담으로 했던 말이 예언이 되었다. 1년 뒤에 너희 둘이 결혼을 하라는 게 현실이 된 것이다.


남편이 그 당시 들고 있던 책은 형(지금의 큰 아주버님)에게 선물을 주려고 샀던 책이었다. 아주버님께서 쓰러져서 건강에 관심을 갖고 관리를 하라는 차원에서였다. 나는 친구 결혼식에 오면서까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정말로 책을 좋아하나 보다고 착각했던 거다. 한 마디만 물어봤어도 우리 인연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가끔씩 책을 읽기도 했단다. 실제로 다양한 책을 영업하고 있었고, 저녁 시간에 총각혼자 있으면서 할 일도 없고 책을 읽었단다. 특별히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일도 거의 없었고 특별한 취미생활도 없었던 시기였다.


남편이 내게 거짓말을 한 건 없다. 단지 나 스스로가 착각했을 뿐이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착각이었다. 남편은 결혼 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온갖 취미생활, 모임, 친구들 만남을 결혼 후 누렸다. 육아는 오직 나만의 몫이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육아와 살림을 혼자 했다. 거의 사기를 당한 결혼이나 다름없었지만

남편이 내게 사기 친 건 없다. 나의 착각으로 오판을 했던 거였다.


결혼 후, 30년 만에 남편이 책을 읽었으니, 사기 친 결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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