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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할 수도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릴 수도 있다.

by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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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 친구들은 우리가 곧 60을 바라본다는 게 서글프다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내게 있어 나이 듦이란 육체의 눈은 흐릿해져 가지만, 내면의 눈은 밝아지는 것이다. 실패도 시행착오도 슬픔도 고통도 그 속에서 깨우침이라는 삶의 진주를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의 외적 인간은 나날이 쇠퇴해 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 2 코린토 4장 16절- 성경구절이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니, '사람은 어떤 계기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한 수 십 년간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나?'라고 했던 부부도, '살다 보면 맞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만 이 지점에 오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밟았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인고의 시간을 밟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견딜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또는 본인의 역량이 인고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희망으로 견딘 게 아니라, 백조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끊임없이 발길질을 하듯이,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는 방법을 찾으며 구하며 두드리며 살아왔다. 성당의 교우들은 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고 했다. 물론 앞으로 또 어떻게 우리부부가 변해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남편이 독서를 한 이후에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 고슴도치의 가시는 녹은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대화를 시도하면 오히려 더 서로의 가시에 찔려 피가 나는 형국이었다. 이제는 그 가시가 녹아서, 아니 어쩌면 세월에 무뎌져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히 나의 감정과 남편과의 온도는 따뜻해졌다.


내가 독서논술 공부방을 하던 초창기 시절, 외부 출강 수업을 한 날 늦은 저녁에 집으로 왔을 때, 어쩌다가 일찍 들어온 남편의 신발이 현관에 있을 때면 그 신발이 반가웠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구나.'라는 생각과 감정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안도감과 자주 보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반가움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그랬던 반가움이 어느 시점부터는 ' 어쩐 일로 오늘은 일찍 왔지?' 하는 냉소로 바뀌어갔다.


그랬던 감정이 이제는 남편이 일찍 귀가하는 게 따뜻한 느낌이 든다. 오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예전에는 음식만 내려다보며 밥 먹는 쩝쩝 소리만 났는데 지금은 책에 관련된 최소한의 대화를 한다. 남편이 설거지를 한 후, 독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상황이 내 정서를 안정시키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거실에서 소음처럼 들렸던 tv 소리를 듣지 않으니 좋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냐는 인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예전에는 소 닭 보듯 했다. 평소에 말을 하지 않으니, 아침에 본들 무슨 인사를 해야 하는지,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최근에 남편과의 고슴도치 가시가 녹은 것에는 몇 가지가 함께 작용을 했다. 단순히 '남편이 독서를 하면서 변화가 되어 부부사이가 좋아졌다.'라고 말할 수 없다. 여기에는 나의 현재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사교육업을 하면 저녁이 없는 삶이다. 가족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저녁 먹을 일이 거의 없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고3 수업을 하면 밤 12시 30분에 수업을 마치기도 했다. 저녁식사 준비는 항상 점심때 다 해놓고 저녁 식사시간도 일정하지가 않았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스트레스도 상당히 많았다. 지금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으니 마음도 편안해진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편안해졌으리라.


결혼 생활의 행복이 꼭 몇 평에 살고, 무슨 차를 타고, 은행에 돈이 얼마나 있고, 어떤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지로 좌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다 갖추면 좋겠지만 하늘은 모든 것을 주지는 않는다. 물론 너무나 궁핍한 정도고, 빚에 허덕인다면 돈이 결혼생활의 행복을 좌우한다. 더구나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대방의 키가 얼마나 큰지, 어디 대학을 나왔는지, 얼굴과 몸매가 어떤지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소득을 창출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하며, 얼마나 의사소통이 잘 되느냐, 정서적, 육체적 교감과 소소하게 함께하는 시간, 서로를 얼마나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가가 중요하다. 또 서로의 단점을 얼마나 내가 보완해 줄 수 있는가가 결혼생활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 같다.


대화가 없거나 소통이 잘 안되는 부부에게, 함께 취미생활을 하면 좋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래서 함께 골프를 치기도 하고 등산도 같이 하는 걸 봤다. 우리 부부는 취미도 달랐다. 얼마전부터 함께하는 게 맨발걷기다. 이번에는 독서까지 공통된 관심까지 생겼다. 독서는 확실히 사람을 성장시키고 부부의 소통을 이끌었다. 우리 가족은 매월 첫째 일요일 저녁에 독서토론회를 하기로 했는데,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나와 가족 모두가 노력할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이다. 한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이 바뀌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40%는 변한다. 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주변의 한 사람이 40%만 변해도 시너지 효과로 두 사람은 60%가 변하는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본연의 40%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가 변하면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서 둘 다 60%가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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