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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에 남편의 첫 요리 도전

사고가 바뀌니 귀가 열리고 행동이 변한다.

by 데레사 Mar 22. 2025

한강의 기적, 연재를 마친다고 했는데 그 연장선상으로 신기록이 있어서 또 소개합니다. 

남편과 딸이 퇴근 후, 옷도 안 갈아입고  다음날  내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요리하고 있다. 남편과 딸이 퇴근 후, 옷도 안 갈아입고  다음날  내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요리하고 있다. 

남편은 작년부터 계속 신기록을 세운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나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였다.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 계란 프라이, 밥솥에 밥 하기가 전부였다. 이번에 미역국 도전은 100% 자발적 행동은 아니었고,  남편친구의 모습과 내 말에 영향을 받았다. 사고체계가 바뀌니까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도 바뀌고 닫혀있던 귀도 열렸다.  남편 친구가 집에서 요리도 잘하는 걸 알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한편으로는 본인도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천할 계기가 없었다. 


내가 며칠 전부터 "친구네는 생일에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준다더라."라고 했다.  어떤 기대감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런 말을 한다고 미역국을 끓일 사람이 아니니까. 그저  친구에 대한 부러움을 그렇게 표현했다. 독서하는 나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내게 미안함이 절절이 느껴지면서  내 말을 듣는 귀도 열렸다.  

그동안 내 말은 거의가 허공으로 흩어지거나 튕겨져 나갔다. 즉 내가 말을 하면 반응도 별로 없고,  또 잔소리를 한다며 짜증을 내기가 일쑤였다.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말도 달리 들리나 보다. 


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 관람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tv에서 축구경기를  볼때는 브라운관으로 들어가서 선수들과 같이 운동장을 누비듯이 시청한다.  어제는 가곡공연 정보가 있어서 내가 가고싶어하니까 같이 가겠단다. 그런 음악공연에는 별로 관심없는데 내게 맞춰주려는 노오력을 하고 있다. 


 남편이 내 생일 전날 저녁에 미역을 끓이겠다고 해서 내가 미리 미역을 불려놓았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미역국을 끓이겠다고 옷도 안 갈아입고 주방으로 왔다.  내게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묻지도 않고, 핸드폰에서 검색해서 핸드폰을 보면서 하나하나 따라 했다. 내게 국간장, 참기름, 마늘, 소금을 달라고 했다. 양념류들이 조리대 아래 수납장에 있지만 많은 양념들을 보고 뭐가 뭔지 모르겠단다. 필요한 양념병들을 싱크대에 꺼내주었다. 


  나와 조리방식이 조금 달랐지만, 인터넷에서 본 요리 과정을 그대로 따라 하더니  제법 맛있었다.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밥이 '남해밥(남이 해 주는 밥)'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렇다.  이제는 남편이 요리를 하나씩 해보겠다고 하니까 비로소 부부가 함께 가정생활을 하는 기분이 든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 입에 들어갈 것은 스스로 구하고 만들어서 먹을 수 있어야 된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돈만 있으면 된다. 언제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요리를 하느냐고.  

그런데 가끔씩 식당에서 사 먹는 것은 괜찮은데 매일 식당 밥을 먹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식당에서 먹지 못할 때도 있고, 식당에서 하는 요리가 얼마나 집 밥처럼 정성이 들어갔을 것이며 재료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 요리 과정이 어떤지를 알 수가 없다.  입이 즐거운 것은 몸에 좋지 않고, 입이 싫어하는 맛은 몸에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리는 아내의, 엄마의 전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요리를 할 줄 아니까' 계속 주부만 요리를  해 왔던 거다.  똑같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요리, 집안 청소 등도 거의 독박으로 해 왔다. 남자는 바깥일을 하니까 '시간이 날 때만 조금 거들어 주는' 정도였다. 일용할 양식은 누구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 아내가 해야 한다는 의식체계는 개인의 가치관과 오랜 관습과 고정관념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는 딸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남자도 자기가 먹을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머무는 곳도 스스로 청소, 정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도 스스로 일용할 양식을 구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혼자 살 수 있어야 결혼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혼자 살 능력이 안 되면 결혼생활에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해주려 하기보다는, 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결혼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려고 할 때  사랑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대부분은 상대방으로부터 혜택을 보기 위해 하는데 그 혜택이 줄어들거나 효용의 가치가 점점 사라질 때 사랑의 감정도 사그라든다. 


남편이 이제야 요리를 하나하나 해봐야겠다고 말한다. 이제야 변한다는 생각과 이제라도 변한다는 생각이 뒤섞인다.  50대 후반이면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시작하면 될 것 같다.  정년퇴직을 기점으로 또 새로운 제2의 삶을 사는 거다.  남편의 요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는 남편의 작은 시작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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