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독서 의지 방해
가장의 독서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가정과 사회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그러나 노안이 찾아온 중년에 독서입문을 했다는 게 안타깝다.
중년이라도 독서를 시작했다는 게 어디냐고 생각할 수 있다. 겨울에 시작한 독서가 봄이 되어도 여전히 진행중이고, 독서에 대한 흥미는 여름처름 불타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저녁에 퇴근 후 책을 읽으면 30분이 채 되지 않아서 눈이 침침해서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독서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다가 남편을 바라보니 눈을 찡그리며 껌뻑 그리고 있었다. 글자가 잘 안 보이니까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억지로 글자를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남편은 다른 곳은 다 건강한데 눈이 침침해서 몇 년 전 백내장 수술도 받았다. 이제는 노안이 왔고, 저녁에는 눈의 피로감까지 있어서 마음만큼 눈이 따라와 주지 않았다.
백내장 발병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축구를 하거나 낚시를 하러 다닐 때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몸 건강만 믿고 오랫동안 자외선에 노출된 것도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노안은 나이 들어갈수록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마음은 독서를 하려고 하지만, 눈이 따라와 주지 않으니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았다.
조금이라도 눈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서 스탠드를 새로 구입했다.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또 돋보기안경도 구입하기로 했다. 시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안경을 낀 나보다도 멀리 있는 글자를
더 잘 알아봤다. 눈의 피로감이 얼마나 해소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상태보다는 낫겠지 하는 바람이다.
동물과 사람의 눈은 세상의 모든 사물과 같은 종족을 보고 그에 대응하는데 필요하지만, 책을 본다는 것은 인간의 특권인 것 같다. 그러나 독서하는 특권을 누리지 않아도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건강하고 돈도 잘 버는 이들도 많다.
어제는 책에서 본 문장을 가족단톡방에 올렸다.
'담배와 술은 지루함을 벗어나려는 게으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이것들은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술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사람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책을 통해서 조금씩 자신을 되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눈을 껌뻑이며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내가 30대부터 노는 시간의 반이라도 책에 할애했다면 지금보다는 다른 모습이었겠지."
남편의 그 말에는 일, 가정, 돈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절절이 녹아있었다. 가슴 한켠에서는 남편에게 질책과 원망의 마음도 꿈틀거렸지만, 그래도 위로를 건넸다.
"자기는 실컷 놀아봤기 때문에 아쉬움도 미련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노년에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 재산을 가지고 있잖아. 그렇다고 돈이 궁핍할 정도는 아니니까. 지금이라도 내면을 다져가면서 제2의 인생으로 새롭게 살면 되지"
남편은 여러 모임이나 취미활동으로 주변에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육 남매와 배우자의 지인들이 모두 왔지만, 남편에게는 장모상이어도 조문객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왔다. 그것도 2시간 거리의 시골 장례식장인데도 그랬다.
요즘은 퇴근 후나 휴일에는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모임이나 친구들이 남편을 불러낸다. 모임도 몇 개를 정리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약속들이 잡힌다고 했다.
딸이 소소한 고민으로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때, 출근한 남편이 책 구절을 떠올리며 그 문장을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했다. 딸에게 그 문장을 보여주고 싶단다. 아이들이 성장할 때는 아빠로서 삶의 가르침을 주지 못했지만 이미 성인이 된 딸들에게 책을 통해 가르침을 주려고 했다.
딸들이 자라는 동안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봤지만 딸들은 핸드폰을 선택했다. 이제는 딸들이 다시 책을 잡았다.
아빠의 영향이 그렇게 크다. 물론 한 부모 가정이어도 얼마든지 잘 살고, 부모가 다 있다고 해서 제 역할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편이 책을 읽기 전부터 딸들에게 강조했다. 만나는 남자가 독해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독해력이 있다는 건 책을 읽었다는 것이고, 최소한의 지식과 지혜를 겸비했을 것이다. 이혼을 한다는 건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민낯을 못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후 토의를 하다 보면 결혼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격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결혼생활의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독서를 하지 않는 젊은 청춘들은 결혼을 하면 안 된다.'라고 표현하면 너무 비약적인 말인가?
남편의 독서로 딸들이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딸들은 문해력도 뛰어나고 책 읽는 속도도 빠른 편이다. 어렸을 때 한 번 길러진 독서법은 오랜 시간 책을 읽지 않아도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되는 것 같다. 한 번 익힌 자전거 타기나 수영하는 법을 잊지 않듯이.
"딸들아, 눈이 건강하고 집중력이 있을 때 책을 읽으렴. 아빠는 지금 힘들게 책을 읽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