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특선 에세이) 누군가에겐 분명한 현실 ①

by Derick

※ 실제가 아닌 가상의 인물, 사건, 단체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다만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생동감 있게 다루고자 하는 목적의 일환이오니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알게 된 친구 C가 있습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던 당시엔 그저 같은 반 동급생 중 한 명 정도, 끽해야 가끔 수다나 떨던 사이였는데요. 막상 졸업 후 대학에 들어가 얼마 뒤, 갑작스럽게 녀석이 먼저 고등학생 친구들한테 한 명씩 연락을 돌리던 중이라며 먼저 제게 찾아온 뒤 가끔 만나서 PC방이나 갈 정도의 사이가 된 놈이었어요.


그러다 녀석이 먼저 군입대를 하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습니다. C가 입대하고 저는 몇 달 정도 뒤에 방위산업체로 들어가 녀석의 군생활보다 더 길게 군복무대체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딱 의무기간을 마치고 사회인으로 복귀한 지 몇 주 안 되어, 갑자기 C가 한밤 중에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때가 서로 연락이 끊긴 지 거진 2년이 더 넘는 시간이었죠.


'뭐야, 얘가 지금? 왜?'

밤 12시가 다 되어 갑자기 C의 연락이라, 그것도 몇 년 만에? 솔직히 되게 의아하고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얼떨떨하는 와중에 연락이 끊기더니, 잠시 후 메시지 하나가 이어서 날아오더라고요.


'오랜만이다. 시간 좀 되냐?'


'미안하다, 지금은 좀. 무슨 일 있어?'


그러더니 C가 대뜸,


'아냐. 알았어.'


라고만 보내더니 그 뒤론 또 응답이 없더라고요. 굉장히 찝찝한 상황이었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어요.

사실 당시 마땅히 하던 일이나 계획도 없었고, 잠시 작정하고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거든요. 슬쩍 통화 정도는 밤늦게라도 할 수 있었고요. 하다못해 사는 곳도 제가 기억하기론 몇 블록 너머에 있어서 소통만 된다면 얘기 정도는 충분히 고려해 볼 만했죠.

그러나 한밤중, 몇 년 만에 느닷없는 C의 접촉 방식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사실 떠올려보면 C란 사람 자체가 겉으로는 내향적이지만, 한 번 몰입하거나 마음이 열린다 싶으면 그때 여과 없이 감정이든 표현이든 튀어나오는 성격으로 늘 비쳤거든요. 그래서 굳이 이렇게 나른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C를 상대하다가 덩달아 감정이 들쑥날쑥해지지 않을지 염려스럽기도 했어요. 여러 이유가 겹쳤던 거죠.


그리고는 얼마 뒤, 동네를 뒤집을 사건 하나가 터졌습니다.

몇 블록 건너 한 아파트 단지에서 며칠 연속으로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고성과 진동이 이어지던 동 하나가 있었는데, 그 집의 중년 여성이 양잿물을 마시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어요.

거기에 그 집의 자녀 두 명 중 차녀가 그 아파트 동의 각종 문서, 통장 등을 포함해 자기 짐을 챙겨 뛰쳐나온 정황 또한 포착했고, 장남은 그냥 넋 나간 표정으로 조사 등을 받게 되었다는 등의 얘기였죠.


처음 그 소식을 저희 어머니한테서 전해 듣고는 무슨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지나, 몇 블록 건너라면 머지않은 곳인데 이 아파트 단지는 조용해서 다행이네, 따위 생각을 하고 넘겼는데요. 근데 반나절쯤 흘러서 문득, 그 사고가 벌어졌다는 아파트 단지가 딱 C가 살던 단지라는 생각이 퍼뜩 스친 겁니다.


급하게 그때 C의 번호로 전화도 걸어보고, 그때 무슨 일이었냐, 메시지도 던져봤지만 응답이 없었어요.

이어서 예전에 녀석이 가족관계에 대해 여동생 한 명이 있고, 부모님은 이혼한 지 오래라는 이야기까지도 전해준 걸 떠올려냈죠.

그날 저녁, 어머니께 혹시 그 사건이 일어난 때가 언제쯤인지를 그냥 궁금하다는 어투로 슬쩍 여쭤봤는데요.


"자세히는 모르지. 그냥 2~3일 전 새벽녘에 그 집 어머니가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얘기는 들었던 것 같은데."


C의 연락이 온 날이 마침 딱 사흘 전 밤 11시를 넘긴 때였습니다.


"아, 근데! 참, 요새 그게 참 말이 많긴 한가 보다. 그 종교 같은 거 있잖아, 애들 꼬드겨가지고 이상한 모임처럼 해서 하는 거. 포교라고 부르니, 요새 그런 걸? 넌 절대 하지 마라, 그거. 안 그래도 그 집 딸이 한창 거기에 다니게 된 걸 알아가지고, 그렇게 새벽까지 난리법석을 떨어서 아파트 바깥까지 다 얘기가 돌았단다."


살짝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모든 정황 자체가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더라는 겁니다. 제가 불편해서라도, 제발 제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랐지만 내심 그 예상이 정답이라는 본능적인 판단까지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들 그런 상황에서라면 굳이 엮이고 싶지 않아 회피하려고 하실 거예요. 저도 그랬습니다. 이게 어디, 보통 누군들 머릿속으로 예상할 만한 상황이겠어요? 국방의 의무도 이제 막 마친 젊은 청춘이, 간신히 다시 누리게 된 자유로운 시간을 그런 데에 쏟으며 인생 낭비할 게 뭐 있겠냐고요.


그렇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떨쳐낸 뒤, 자고 일어난 바로 다음날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단호하고 간결한 문장이었어요.


'너희한테는 아예 이런 일 없을 것 같아? 나라고 알았겠냐?'


아마 단체 문자로 보낼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낸 듯했습니다.

아침에 비몽사몽 상태로 그 문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다른 연락이나 접촉 시도 등은 더 없었지만, C로 추정되는 그 번호로 온 문자를 몇 년 더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까지도 손도 못 댄 채 메시지 목록 어딘가에 묻어두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 가족이 지내던 아파트 동도 얼마 안 가 경매로 넘어갔다 하고, C의 행방 또한 이제는 알 길이 없는 상황입니다. 당시 지역 뉴스까지는 나오지 않아도, 동네 근방 호사가들이 단골 술안주 삼아 꺼내듯 하는 사건이었어요.


그때 C가 꺼내려 한 이야기가 그저 신세 한탄이었을지, 아님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직접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탁한 불쾌감 같은 게 어디선가 기어 나와 숨까지 막힐 지경입니다. 다만, 이런 감정을 아마 C는 그 시절 누구 못지않게 뼈저리도록 느끼진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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