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가 아닌 가상의 인물, 사건, 단체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다만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생동감 있게 다루고자 하는 목적의 일환이오니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대로 어디 가서도 당당하고 재미지던 삶이었어요. 그러다 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막막해졌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물론 늘 탄탄대로는 아니었죠.
결혼 후 4년 여 만에 이혼에 가까운 별거를 시작,
그 시점부터 잘해오던 사업이 순간 경쟁 사장들과의 시시비비 끝에 소송까지 당해서는 곤두박질쳤어요. 평생 감기도 잘 안 걸리던 몸에 그때쯤 한 번 크게 이상이 와 병원 신세까지 진, 생에 첫 번째 위기였죠.
하다 보면 될 거라는 자신감으로 헤쳐온 기세가 나이 삼 십하고 넷에 처음 한 번 꺾였습니다.
그때 마냥 무너져 내렸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고통과 무기력함이 제법 길어져 그 시절엔 자식들과도 연락이 끊겼습니다만, 그러다 또 살아보려고 발버둥이라도 해보려 하니 살 길이 열립디다.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종종 혼자 취미 겸 여러 농장을 찾아가며 쉬곤 했지요. 알음알음 원예나 삽목 등도 배워보고요. 그러다가, 마침 친구 녀석 한 명이 아예 원예 쪽으로 길이 터서 전문 농사꾼이 되려 하는 참인데 제게도 같이 해보지 않겠냐 손을 내밀었어요.
첫 판로 트는 게 번거롭지, 일단 자리만 잡히면 직장인들 일하고 스트레스에 치이며 사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는 겁니다.
사업 시작 이전 영업팀에서도 근무하며 이미 톱을 찍기는 했지만, 이미 일반 회사원으로는 성에 차지도 않았죠. 그렇다고 또 사업장을 말아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무리하게 판을 바로 벌여놓기에도 부담스럽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시작한 원예 농사가 십수 년 이어진 지금, 글쎄요. 그럭저럭 생활할 만큼은 벌지만 계속 아쉽달까요. 본래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할뿐더러 해 뜰 녘부터 한밤중까지 썩어 빠져라 일하는 데에 비하면 정말 현상 유지나 되는 수준.
게다가 자식새끼들은 기껏 다 키워놔도 이젠 제 아비에게 인사 한 번 제때 없는 우라질 놈들입니다. 물론 아비로서 결국 집안을 잘 돌보지 않은 점도 있긴 해요.
근데, 그렇다고 부모 자식 간이 그리 쉽게 드문드문해질 일이냐는 겁니다. 어릴 때 교육을 제 어미한테서 얼마나 못 배워먹었으면 그러는지.
허구한 날 대출 상환 문자나 날아오고, 경기가 이 모양이라 원예대량식재 건도 줄어서인지 예년 이맘때쯤 돈주머니처럼 찾아오던 발주들도 줄고, 어쨌든지 낙이 없어요. 즐거울 락 말입니다, 그 락.
'어이, 함 형. 그래서 도대체 언제쯤 상장된다는 것인지 아직도 몰라? 벌써 반년을 훌쩍 넘겼어. 한두 달 안에 거진 된다면서 꼬드길 때는 언제고 왜 계속 말을 돌려?'
요즘 가족보다 더 자주 말을 거는 김 씨인데, 사실상 불평과 추궁이 다예요. 아무리 채굴비율을 높이는 게 중요했다지만, 이 새끼는 괜히 끌어들여서 머리만 썩히고 있어요. 아무래도 처음 얘기할 때 너무 바람을 넣었으려나요?
'비상장 무료채굴 화폐지만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고, 이미 전문가들도 앞다퉈 눈독을 들이는 중이니 용돈벌이 삼아서라도 미리 모으면 머잖아 곱절로 돌려받을 거다'라는 말은 사실 이 바닥에서 누구나 시작하거나 혹은 꼬드길 때 주고받는 의례행사 정도인데.
좌우지간 처음부터 농사일이 쭉 몇 년 동안 흐름 타서 잘 됐으면 저도 애당초 코인인지 뭔지에 눈돌릴 일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막막해졌는지.
제 앞날도 막막한데 심심하면 가게와 하우스까지 찾아와 성가시게 하는 김 씨 그 양반과 오늘은 말씨름까지 벌였습니다. 글쎄 이 머저리 같은 양반이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다른 유망코인이니 하는, 소위 '증권가찌라시'에 저를 벗겨먹으려는 수작인 것도 모르고 대출까지 껴서 사재기를 해둔 게 있는데 여지없이 다 들고 날라서 뒤통수를 맞았답디다. 그러면서,
'함 형이 처음부터 관심도 없던 날 수작질로 눈 돌아가게 만든 것 아냐! 그때부터 지금까지 결국 다 꼬여버린 것 아냐?!'
라고 외려 제게 성을 냅디다.
'이 양반아. 내가 처음부터 돈지랄을 하라고 했어? 무료로 받아먹을 수 있는 것부터 받아먹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상장하고 이런 때 제대로 뛰어드는 게 기본 아니야? 자네 기초교육도 못 받았어? 어딜 지금 엄한 놈 붙잡고 성질을 부려!'
저도 그간 참은 화를 그때 한번 크게 내고선, 오래간만에 들어온 업체의 발주 문자가 오기 이전까지 몇십 분은 다툰 듯합니다. 그래도 제 성질을 못 이겼는지,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는지,
'이딴 식으로 대해서 좋을 것 하나도 없을 줄 아셔요, 예?'
지질한 협박 같은 경고나 날리며 뒤돌아서는데 어찌나 하찮던지. 저런 잡것하고 시간만 잡아먹었다 생각하니 속도 쓰려왔죠. 그러다 한참 생각해 보니, 저런 잡것보다도 아예 날 남남처럼 대하는 자식들, 그중 장남이란 녀석이 괘씸해지더랍니다. 연락을 두 번 연달아하니 그제야 받더랍니다.
"너 인마, 저, 요새 뭐 하고 다니냐?"
"왜요."
"왜요는, 아비가 그럼 자식새끼 근황도 아예 안 물어보고 다닐까?"
"지금 와서요?"
"뭐야?"
"하다 하다 코인까지 손 벌이려 하시느냐고 여쭤보니, 자식새끼란 게 어찌 아비 맘은 이리도 모르고 사사건건 불평불만이냐, 멋대로 굴 거면 내친김에 연 끊자, 고 지난해 가을쯤 말씀하셨어요. 혹시 기억 안 나시면 제가 녹음본도 보내드려요?"
순간 좀 당황해서 호흡까지 멈췄는데, 아들놈이 점점 거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더군요.
"이참에 전화도 먼저 하셨으니 저도 할 말은 좀 하고 끊을게요. 지금 동생이 전세사기 당해서 죽을 동 살 동 하는 건 혹시 얘기라도 들으셨나요? 관심 없으시죠? 그래요,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근데! 가장이 되셔서 책임지기 싫어서 아예 작정하고 집 나가 사는 상태시면요. 최소한 그만 좀 무게 잡으세요. 뭐 그리 잘나셨는데요? 저도 요새 동생 일 때문에도 제 일 때문에도 덩달아 스트레스니까, 그냥 끼어들지 마시고 원 없이 뭐든 혼자 다 하세요. 제발."
대꾸할 여지도 없이 장남은 한참 말을 쏟아내더니 툭, 먼저 전화를 끊었습니다. 손이 저절로 둘째 딸의 번호를 찾아 통화 키를 눌렀지만, 받지 않더군요.
두어 차례 계속 통화 키를 누르니 아예 가자마자 신호가 끊기더랍니다.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어쩌다 사는 게 이 정도까지 꼬였을까요.
남들에게 아버지란 태산 같은 무게감,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이려나? 난 우리 집 꼰대 양반을 보며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 없다. 오히려 언제 수틀려서 또 자기 자리를 비울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느꼈을 뿐.
가족들 사이의 반응이 좋고 나쁜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란 때부터 부모님 두 분 사이가 소원하신 건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 아예 나나 동생을 따로 불러다 다른 외간여자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본인의 친구라며. 어지간히 미친 짓이지만 어린 나나 동생이 뭐 상상이나 해본 일이었겠나?
오래지 않아 두 분은 사실상 이혼 수순을 밟았다. 그 뒤 나는 커 갈수록 아버지란 인간이 정말 자식이 필요로 할 때는 없다가, 뜬금없이 나타나 엄한 소리들로 속을 뒤집어놓는 재주가 있다는 걸 체감했다. 더불어 욕심도 과하게 그득그득하고.
나도 누군가를 마냥 힐난하기엔 그리 변변치 못한 사람이다. 직장도 평범한 회사원, 스펙도 그저 그렇고, 성격마저 지질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가족을 끝내 등지고 사는 꼰대 양반처럼 되긴 싫어 최대한 노력했다.
근데 지금 돌아온 건, 결혼생활의 실패를 아직까지 곱씹으며 서른 넘은 아들을 붙잡고 그때의 아픔을 자꾸 토로하는 어머니와 대학생이 되자마자 자취한다고 나가서는 뭐든 저지르고 보다 전세사기 한 방에 무너져 술만 퍼마시는 동생. 코인판까지 기웃한다며 자기 뜻을 몰라주네 어쩌네 아직도 헛소리나 지껄이는 아버지. 그 사이에서 대가리가 깨지기 직전인 나.
그들 모두 알까, 정작 전부 내려놓고 싶은 건 나인 걸? 오늘 또 괜히 그 늙은이 목소리를 들은 바람에, 복받친 감정이 터져 나왔지만 정작 하나도 개운하지 않다. 이미 전부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아서일까.
한숨이 가득 나왔다. 며칠 전, 그냥 한 번 인터넷으로 사본 액상형 쥐약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건 너무 대놓고 티가 나니, 혹시 몰라 한 번 쟁여놓고 보니 이렇게 열이 확 올라오면 술이나 담배 대신 저게 더 아른거린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