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특선 에세이) 누군가에겐 분명한 현실 3

by Derick

※ 실제가 아닌 가상의 인물, 사건, 단체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다만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생동감 있게 다루고자 하는 목적의 일환이오니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관리자 직급으로 이 대형매장에서만 어느덧 4년째 지내는 중이지만, 정말 갈수록 요즘 친구들과는 일하기가 지긋지긋, 골이 아픕니다.

인정할 건 하죠. 저도 체대 나오고 부사관까지 해보면서 엄밀히 따져 남들이 성공하려고 죽어라 공부하는 정도까진 해본 적 없어요. 다만 직업군인 행세까지 하며 체력과 집념만큼은 누구한테도 쉽게 안 꿇릴 만큼 제가 내세울 특기가 되었죠.

그러고 전역을 택한 뒤, 크게 배운 건 없는 그 상태에서 막노동보단 그나마 생활패턴이 보장돼 있는 보안요원이 되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대학 선배 연줄이 닿아 추천도 받았겠다, 그렇게 시작한 이 업계에서 밥 벌어먹고 산 지 어느덧 12년쯤입니다.


요즘은 진짜, 차라리 아랫것들 싹 다 쳐내고 나 같은 사람 그대로 두 명만이라도 더 데려다 일하고 싶어요. 정말 하나같이 거슬리고 아니꼬운 것들뿐입니다.

특히 그중 들어온 지 이제 4개월 정도 된 친구, 처음엔 허우대도 멀쩡하니 요즘 친구치곤 괜찮아 보인다 싶었죠.

근데 사람 진짜 겪어 봐야 안다고, 갑자기 그 친구를 중심으로 잡음이 계속 들리더랍니다. 지금 일하는 친구들 중에선 나이가 제법 있는 편이라 처음엔 그래도 형이랍시고 뭔가 북돋아주려나보다 했어요.

근데 글쎄 자꾸 그렇게 그 친구와 엮이는 직원들 몇몇이 자꾸 여기 이렇게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내 길을 따로 찾아봐야겠다, 뭐 이런 이유들로 나가더랍니다.

그 친구들 입장에서야 어찌 보면 아직 어리니 할 수 있는 얘기겠지만, 현장 최고관리자인 내 입장에선 인원 좀 맞춰서 일 좀 굴리려고 보면 꼭 이런 사달이 난다는 겁니다. 그것도 이번엔 고작 이십 중반쯤 된 새파란 애새끼 하나가 미꾸라지처럼 분탕질을 하는 바람에.


이참에 잘 됐다, 너무 내가 한동안 또 기강을 안 잡았다 싶어 그가 잠시 시간이 빈 때를 확인해 그를 호출했습니다.

"부르셨습니까, 소장님."

"내가 지금까지 P 씨를 험하게 대한 적 있습니까?"

"네?"

"들었잖아. 내가 당신 막 대한 적이 있었냐고."

"소장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갑자기? 당신이 지금 일터 꼬락서니 개판으로 해놓고 지금 그걸 나한테 되묻는 게 상식적으로 맞아? 여태 나이 좀 더 먹었다고 애들 붙잡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하면서 분탕질한 거 모를 것 같았어? 왜, 나이 여기서 제일 많은 내가 지랄하려니까 또 겁나? 당신, 세상 돌아가는 게 우스워? 이 회사나 내가 그렇게 만만해!"

저라고 뭐가 좋아서 이렇게 윽박지르고 싶겠습니까. 저도 굳이 인성 바닥나보이는 짓도 하기 싫은 데다, 나이를 떠나 학교도 아니고 이런 걸 가지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한테 지적하는 게 얼탱이가 없습니다만!

근데 어쩌겠어요. 이미 일은 터질 대로 터졌고, 수습은 해야 하는 거잖아요? 관리자가 그런 거 수습하라고 있는 건데 뭐 어쩌겠냐고요.

"당신보다 어린 직원들한테 말 잘하는 것 같더니만? 어디 나한테도 말을 해봐. 당신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더 드러나 보게. 말을 해봐, 어디!"

순간 울컥해 언성이 높아졌다가 간신히 화를 억눌렀어요. 그 친구의 잔뜩 굳은 표정을 보니 이렇게 윽박지르기만 해서는 답도 없겠다, 싶더군요. 근데 그러다가도 고작 이 정도에 맛탱이가 가는 꼴을 보니 또 벌컥 화가 치밀어 저도 맺힌 말들이 자꾸 튀어나오더랍니다.

"그래, 뭐 그만 일하고 싶어요? 이 친구야, 보안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용역업체가 그럼 왜 있겠어? 남들 다 하기 싫은 일 참고 하라고 돈 받고 있는 거 아냐. 그렇게 하기 싫으면 애초에 공부를 잘......"

"알아들었어요. 알겠으니까 씨발 적당히 하세요, 용역보안 소장님."

순간 머리가 벙쪘습니다. 계속 침울한 표정을 짓던 그 친구가 한순간 날이 선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더랍니다.

"뭐야? 너 이 새끼 지금..."

"왜? 또 열받고 꼬우면 다른 직원한테 하듯 사커킥 갈기시게요? 어지간히 하세요, 진짜 신고당해요."

"뭐, 이 새끼야? 네가 지금 어디서 나한테 감히 개기고 앉았어? 너 지금 네가 잘해서 여기 와서 서 있어?! 어디 앞이라고 개념 없이, 어?!"

"지랄. 개좆같이 씨부리면서 기분 오락가락하는 대로 아랫사람들한테 화풀이하는 거 맞잖아, 개만도 못한 새끼야. 늙어 갖고 할 것 없어서 이런 데 소장씩이나 있으면 성질이나 죽여, 나 같은 새끼한테 잘못 걸려서 뒤통수 후두려맞기 싫으면."

제 독기를 아득바득 입으로 삼키듯 조곤조곤 말을 내뱉는 그 친구 모습을 보니 저도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번엔 건수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안 그럴 것 같던 사람이 그러니 더 당혹스러웠습니다. 그것도 내가 제일 대가리인 현장에서.

"아주, 씨발 가뜩이나 가족새끼들도 하루하루 개지랄인데 직장 상사란 년도, 개씨발 좆같은 짓거리만 골라 쳐하네, 씨발 진짜!"

급기야 제 당황한 기색을 본 그 친구가 거의 술주정뱅이처럼 욕을 섞으며 중얼거리다, 마지막엔 제 책상 위 서류더미를 손으로 밀쳐 떨구기까지 했습니다.

"야, 이 미친 또라이 같은 새끼야! 꺼져, 당장! 앞으로 내 눈에 띄지도 마, 미친 또라이 새끼야!"

"억지로 붙잡고 부탁해도 안 나온다, 버러지 새끼야."

그렇게 한참 서로가 험담을 퍼부은 뒤, 그 친구는 미련이 없다는 듯이 걸음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그 친구가 나가니 볼일이 있던 다른 사원들이 그제야 눈치를 살피며 들어오더군요.

"미안한데 이거 바닥 서류들만 좀 책상에 정리 좀 부탁한다."

"아, 네."

사원 두 명이 서둘러 바닥정리를 하는 동안, 전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두통약을 꺼냈습니다. 그렇게 검지 손톱만큼의 알약을 하나 삼키자마자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씨발새끼야!"

라며 아까 사무실에서 즉각 해고 통보까지 받은 그 친구가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제게 달려들더군요. 바닥 정리를 하던 사원들이 허겁지겁 제지를 하는 와중, 제 눈에 그 친구가 손아귀에 쥔 짧은 각목 같은 게 짧게 비쳤습니다.


그 사건 뒤로 이제 1주일이 흘렀습니다. 끝내 경찰까지 출동해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잡혀간 그 친구만큼이나 저 역시 한참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위에서도 외주사에서도 번갈아 인력 관리가 애당초 왜 이 모양이었는지 지랄, 지랄이었죠. 거기다 그 뒤론 사원들에게도 더욱 뭔가 세게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더군요. 그 친구가 갑자기 그랬듯, 언제 그런 미친 행세를 할지 누가 또 알겠어요?

어딜 가나 사람 상대하는 게 제일 힘들다더니, 하루에도 몇 년씩 늙어가는 기분입니다. 대체 저도 어디서부터 삶이 이렇게 꼬인 걸까요? 차라리 그 친구처럼 빡친다고 눈깔 돌아서 미친놈처럼 굴 수 있으면 간단히 끝나기라도 할 텐데.

현실은? 오늘도 갑자기 본사의 윗사람들이 자리를 갖는데 와서 눈도장이라도 찍고 가라며 저를 부릅니다. 뻔하죠, 가면 또 어떤 추태가 나돌지.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 저도 먹고살자고, 특히 약혼녀와의 단란한 생활을 담보로 하는 거죠. 이젠 더더욱 나 혼자 수틀린다고 다 뒤짚어엎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까.


그 시절에는 스스로도 왜 그런 행동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단지 그 일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이미 슬슬 전조 증상이 나타났던 걸 그때는 그저 감정에만 취해 놓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땐 어린 마음에 세상 모든 게 다 야속했거든요. 가뜩이나 가족들은 전부 저랑 말도 안 통하는데, 다 커다란 하자는 못해도 하나씩 갖고 있으면서 자꾸 내게만 쓴소리하고 지적하니까 자존감도 떨어지고. 아니, 그걸 떠나서 그냥 세상에서 진짜 본격적으로 혼자 내버려진 느낌이었어요.

근데 그 와중에 생활비라도 벌겠다고 일하러 가는 곳엔 늘 가족들과 연인들, 못해도 무리 지어 노는 친구들, 그리고 저는 그때 얼마나 못났으면 먼저 술 한 잔 하자고 연락 걸어오는 친구조차 없는 신세.

그래서 이미 며칠 전 어느 저녁 퇴근길에, 한창 봄꽃 가득한 퇴근길을 걷는데 눈물이 미친 듯이 나더라고요. 마주하는 사람들이 정신줄을 놨나 생각할 만큼.

그러는 와중 저와 얘기를 나누는 사원들, 동료들이 회사 뒷얘기도 하고 그러니 저도 자연스레 좀 뒷말을 하며 어울렸고, 그러다 몇몇이 자연스레 퇴사를 하니까 괜히 소장이란 그 사람이 그 화살을 돌렸던 거예요. 제 입장에선 억울할뿐더러 거의 모욕 수준의 언사가 이어지니, 진짜 감정이란 게 슬픔을 넘어 분노로 바뀌더라고요.

어쨌든, 수년이 지난 뒤 다시 생각해도 제 잘못인 건 맞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간신히 더 법정싸움으로 안 가고 합의로 끝났고, 그러니 저도 지금은 이렇게 진정한 채로 회상을 할 수 있는 거겠죠. 운이 좋았던 게 맞고, 그 뒤로 반성하고 깨달은 것도 많아요.

근데 웃긴 게 말예요. 사람이 참 나이가 들면, 좋은 의미로 바뀌기는커녕 오히려 어지간해선 망가지나 봐요. 저는 이제 제법 그때보다 성장했는지, 그냥 별 감정 없이 동네 근처이기도 한 이 건물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요. 참 가끔 여길 올 때마다 한 번씩 멀찍이서 눈에 들어오는 그 소장 아저씨 얼굴이 어찌나, 진짜 피부나 안색 자체가 까매져서는 표정까지 더 굳은 게 울화가 얼마나 쌓이고 쌓이면 저러나 싶더라니까요.

사람 사는 게 이래서 진짜 모르는 건가 봐요. 불과 몇 년 전 사무실 안에서 제 훈계를 하던 아저씨를, 이젠 입장 바꿔 제가 평가하는 입장이라뇨. 그래도 굳이 아는 척은 더 안 하고 스쳐가려고 해요. 각자 선택한 데로 사는 거니까요. 굳이 더 말 섞을 만큼 좋게 끝나지도 않았고.

"P야, 어디야?"

"응, 지금 매장이야. 먹고 싶다던 아이스크림 사서 들어갈게."

더해서 지금 저는요. 제 여자친구와 지금처럼 일상 전화 하나하나 살갑게 주고받는 시간이 훨씬 소중해서요.

지나간 일 따위, 그저 그렇게 두기로 하자고요. 저한텐 어차피 지금 말고는, 남을 것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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