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가 아닌 가상의 인물, 사건, 단체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또한 미신 조장의 의도 또한 포함돼있지 않습니다. 작품은 작품으로 즐겨주세요.
여러분도 혹시 살면서 기묘한 경험 하나씩 해보셨나요?
아, 제가 말한 기묘한 경험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진짜 초자연적인 기묘함 있잖아요. 비현실적이고, 사실 말도 안 되는데 눈앞에 분명 생생히 벌어지는 그런 일들이요.
이게 끔찍하다거나 그런 일은 아닌데 말이죠. 전 살면서 한 번도 이런 걸 직접 겪으리라는 생각조차 전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몇 주 지난 일인데도 자꾸 머리를 맴도는군요.
간만의 연차까지 더해서 5일간의 휴가를 얻어 고향집으로 내려갔어요. 제 고향집은 도시 바로 옆의 시외인데, 요새 그 근방까지 개발을 계속하는 중이라 도시와 시골의 광경이 묘하게 겹쳐 어우러져 있어요. 그래도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논밭과 둔덕이 쭉 이어지기는 하지만요.
대학교 올라가면서 저는 바로 도시 생활을 쭉 이어간지라 지금처럼 간간이 시간 날 때 들르는 정도지만, 그때마다 야금야금 바뀌고 개발이 이어지는 고향 동네의 광경을 보면 제가 나이를 먹긴 먹는구나 싶기도 하죠. 근데 유독 그 와중에 여전히 변하지 않고 어릴 적 제가 보던 모습대로 존재하는 곳이 있어요. 마을 뒤편의 조그마한 야산으로 이어지는 도로 건너 샛길, 그 근처만큼은 정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지 그대로더군요.
사실 뭐 가만 보면 그럴 만하기도 한 곳이거든요. 진짜 뭐 특별할 것 없는 야산 그 자체에다 다른 둔덕마다 조그맣게 자리한 사재마저도 그 근방만큼은 한 채도 없죠. 관광을 할 만한 숲이나 쉼터 같은 곳도 없이 버려진 공터입니다.
근데 한 번씩 묘하게, 어렸을 때에도 그 근방을 지나치거나 멀찍이 바라볼 때가 되면 칙칙하니 안개 같은 게 서려 있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런 느낌을 받은 날이면 꼭 마을 어른들도 뭔가 수군수군하는 모습도 보이고 그랬죠. 어릴 땐 뭔지도 모르고 부모님께 무슨 일인지 꼭 여쭤봤는데,
"조용히 해.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부모님께선 꼭 입단속을 나섰죠. 어린 마음에 '그냥 엮이면 안 될 건가 보다'하고 그 이후로는 그냥 그런 모습을 몇 번 더 봐도 조용히 지나쳤어요.
근데 얼마 전 휴가를 조용히 보내려 고향으로 돌아간 그때, 정말 오래간만에 다시 마주한 그곳에서 아주 기묘한 일을 겪게 된 거예요.
나중에 더 알아보니 그런 개념 자체가 아예 따로 있더라고요. 그 왜, 어떤 장소나 물건에 다다르거나 닿기만 해도 그곳에 엮인 지난 기억들이 마치 조각이나 사진처럼 쭉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 말이죠. 제 경우에는, 약간 달랐어요. 밤산책을 갑자기 하고 싶어서 집 뒤편의 길을 쭉 따라 걷다가, 우연찮게 그 샛길 근방까지 가게 됐어요.
사실 뭐 다 제 어릴 적 풍경 그대로이고, 유유자적 밤풍경을 즐기며 걷다 보니 별 감정이 안 들었어요. 그러다 샛길 입구가 슬슬 보일 즈음, 꼬맹이 시절에 언뜻 보고 느꼈던 그 묘한 기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구름까지 낀 날이라 특히 달빛까지도 드문 저녁이었는데, 그 주변에서만 갑작스레 정말 확 티가 날 정도로 안개 같은 것들이 삭 올라온 듯한 느낌이 들었단 겁니다.
이어서 안개가 서린 듯한 곳까지 본격적으로 발걸음이 닿는 순간, 뭔가 짧은 형상 내지 기억 속 단면 같은 게 생각을 스쳤어요. 긴박한 분위기, 흔들리는 초점, 가빠오는 숨, 흡사 영화 속 추격전 같았어요. 이어서 샛길로 빠지는 길목 앞까지 이르니, 드디어 짧은 사진 앨범처럼 단편적으로 이어지던 머릿속 형상이 영상 재생을 하듯 쭉 이어지더랍니다.
한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도로 한복판을 뛰어가다가, 급히 샛길로 빠졌습니다. 심장과 폐가 한계에 다다른 듯 거친 숨이 연이어졌고 다리의 힘도 점점 빠지는 게 보였지만, 멈추질 않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무언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듯 뒤를 계속 살피던 중, 끝내 뒤를 한 번 쓱 돌아본 순간이었어요. 길바닥에 발을 잘못 디뎠는지 균형을 잃은 탓에 상체가 바닥으로 고꾸라지다가 샛길 옆의 풀밭으로 몸이 완전히 나자빠졌죠.
그 시점에서 느닷없이 제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같은 게 들려서 화들짝 주변을 살폈어요. 전혀, 비명을 지를 만한 사람 같은 건 보이지 않았죠. 비명이 잠깐 울렸다 끝남과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던 선명한 형상 같은 것들도 즉시 자취를 감췄어요. 대신 다른 게 서서히 실제 제 두 눈에 비치기 시작했죠.
분명 구름이 달빛마저 가린 어두운 날이었는데, 꽤나 분명히 사람처럼 보이는 뭔가가 보였습니다. 다가오는 것 같지도, 멀어지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저 제가 지켜보고 있는 저 샛길 한참 너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무언가였죠. 두 발로 꼿꼿이 서 있는 느낌은 들지만, 막상 또 발끝은 안개 같은 느낌에 가려진 탓인지 흐릿흐릿하기도 하고, 근데 이 달빛도 희미한 저녁때에 제가 다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역시도 기이하고.
그렇게 제가 숨죽여 샛길 방향을 움츠린 채 지켜보는데, 다시 어떤 기억 같은 게 이어지더군요. 아니, 정확히는 귀로는 들리지 않는데 제 의식 속 어딘가에서 마치 들린다고 인지하듯 떠오르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요.
한 여자가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다가, 점점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목소리로 한데 뒤섞여서는,
"서 있지만 말고 이리 와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하고 계속 실타래처럼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왜 무시해?"
라는 정체불명의, 성별을 가릴 수 없는 괴기한 목소리가 정말 바로 귓가에서 울렸습니다. 저는 분명 그게 실제 목소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비로소 무언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겁에 질려 내빼버렸습니다. 맘속으로 온갖 욕을 혼자 삼키며 다시는 혼자 여기 근처에 얼씬도 말아야겠다, 날벼락을 맞아도 제대로 맞았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어요.
혼자 밤산책을 나간 서른 줄 자식이 혼이 다 빠진 모습을 하고 돌아왔으니 어머니는 무슨 일이냐고 덩달아 놀라시며 자초지종을 물으셨죠.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진정을 한 후 슬쩍 뒤편 샛길로 이어지는 야산 방면에 다다랐다는 식으로 운을 띄웠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거기까지 기어가서 뭘 봤어?"
하고 제법 진지하게 되물으신 겁니다. 제가 뭘 봤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평생 해본 적 없는 체험은 방금 한 것 같다고 말을 꺼내자,
"그럼 이제 잊어. 거기 엄마 어릴 적부터, 꼭 한 번씩 사람들이 잘못 기어들어갔다가 정신줄 놓고 그랬어. 아주 예전부터 종종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진짜 꼭 잊을만하면 마을 뒤숭숭하게 할 소문이 속속 나오도록 만들었단다. 그래서 엄마가 다 커서 결혼할 즈음에, 보다 못해 당시 어른들이 이런 거 계속 회자되고 소문나면 더 난리가 난다고, 아예 입 밖으로 언급도 하지 말자 단속을 하고 그랬어. 네 어릴 때도 그래서 굳이 얘기 안 하고 혼자서는 절대 그 근처도 못 가게 한 거야."
"그런 게 있었어요, 이 동네에?"
"네 또래들 마을에서 태어날 쯤부터 아예 건수 날 일 자체를 만들지 말고, 소문도 내지 말자 했으니 너희들은 몰랐겠지. 그래도 요샌 밤에도 훤하고 동네도 개발 다 하고, 뭣보다 그렇게 단속을 다 하니까 알아서 잠잠해지는 것 같아서 나도 순간 잊고 지냈다. 절대, 이제 그 근처엔 혼자 가지도 말고 그냥 똥 밟은 추억쯤으로 넘겨. 알았어?"
그렇게 우선은 일단락한 이야기입니다. 다행히 전 그 뒤로 딱히 뭔가 겪은 사고 따위가 없었으니, 자연스레 휴가를 마치고 일상을 보내며 금세 잊고 있었죠.
근데 바로 어제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해서 짧게 얘기를 나누던 중,
"너 올라간 뒤에 글쎄 마을 출신인 네 또래 애가 어린 새끼들하고 고향 내려왔는데, 그 일가족이 차를 타고 그 야산 쪽 샛길을 지나다 무슨 사고가 났단다. 다행히 가족들 다 부상으로 끝났는데, 그 남편이 하는 말이 거기가 그럴 기미가 없다가 안개 같은 게 바닥에 자욱해지더니 무슨 기괴한 목소리 같은 게 윽박을 질렀다나? 왜 또 기어들어와! 하고 말이야. 하도 소리가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라 정신이 순간 나갔더란다. 너는 혹시 올라가서 별일 없었냐?"
그 얘기를 들으니, 괜히 또 심장이 내려앉을 듯 울리는 것 같았어요. 이런 기괴한 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여태 깊이 생각조차 안 해본 일이라 당혹스러워요.
혹시, 그날 그 샛길에서 제가 겪은 일이 뭔가를 새로 건드리게 된 걸까요? 그럼 그 뒤 전해 들은 사고 소식이 혹시, 제가 뭔가를 새로 잘못했기 때문일까요?
앞으로 고향에 가면, 전 거기를 어떤 식으로든 무조건 피해 다녀야 하는 게 맞을까요?
갑자기 귀에 아른거려요. 왜 무시하냐, 고 제게도 쏘아붙이던 그 목소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