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특선 에세이) 이번에는 진짜일지도 모를 이야기

by Derick

기약 없는 소식일 걸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고 기다려본 적이 있나요?

저는 봄에서 여름으로 슬슬 넘어가는 이맘때, 특히 그 소식이 제게 닿지 않을까 싶어 이 강변공원을 찾아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이 공원을 찾아온 겹겹의 시간들, 본래 제 성격에 그 추억조차 없이 혼자 여기를 찾아올 일이 있었을까요?

근데 돌이켜보니 이젠 본래 제 성격이 어땠는지도 가물가물하군요. 그 사람과 보냈던 1년 남짓한 시간이 그새 제 티끌만치 사소한 습관이나 의식까지도 바꿔버렸나 봐요.


"캐나다는 어쩌다 간 거예요?"

"한 번쯤은 어디든, 바다 건너 살아보고 싶었어요. 마침 비자 딸 기회도 생겼고, 딱 그 정도?"

"의외로 행동파시네요, 그럼. 차분해 보여서 엄청 신중하실 것 같았는데."

"결정하기까지가 오래 걸리죠. 일단 작정하면 밀고 나가는 거고."

그 순간만큼은 내 조건이나 배경 등이 아닌, 온전히 나 자체를 궁금해하는 J의 질문들이 편했습니다. 제 대답 하나하나 추궁하는 기색 없이 은은한 미소로 받아주는 J의 태도까지도 계속 눈여겨봤어요.

"근데 왜 물어보기만 하세요? 너무 제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아아, 저 원래 듣는 거 좋아해요. 말주변도 서툴고."

"그래요? 음, 저번에 통화하시는 거 주워 들었는데 얘기 잘하시던데."

"아아, 그때 그거요? 잠깐 친구들하고 실없는 말 좀 한다고. 쓸데없는 얘기죠, 뭐."

"그게 좋은 거죠. 입담 충분히 좋으시던데."

J가 민망함을 감추려 했는지 평소보다 더 큰 소리로 웃어 보였어요. 그때 우리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묘한 감정, 초여름 밤의 살짝 선선한 바람, 그 뒤 쭉 J가 편한 얼굴로 함께 이야기하던 모습까지도 머릿속에 아른아른합니다.


이제는 그렇게 둘이 마주 걷기는커녕, 연락조차 닿지 않네요.

언젠가 나지막이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던 J는 한 달 전쯤인가, 느닷없이 출국 통보를 전했어요. 기회가 닿아 유학 겸 어학연수 겸 기타 등등,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고요.

"얼마나 갔다 오게?"

"음, 모르지. 기회가 되는 만큼 최대한 오래?"

"그럼 아주 가 있을 생각도 했다는 거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가족들 빼곤 지인들 중에 처음 얘기하는 거야."

"지인들 중?"

그땐 J의 그 단어 선택 한 번이 순간 왜 그렇게 거슬렸는지 모르겠어요. J도 제 표정을 슬쩍 보더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한 듯 덧붙였죠.

"그런 게 아니고, 친한 사람들 중에......"

"그래서? 결론은 당신한테 나는 그냥 뭐, 한국에서 남은 시간 지낼 동안 같이 재미나 좀 보고 땡, 딱 그 정도로만 친한 사이다, 이 얘기잖아?"

사실 그때 이미 다른 개인사가 여럿 겹쳐서 혼자 어디 털어놓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했었거든요. 그래도 더 좋게 대화로 풀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땐 제게 그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J도 제가 다소 정색을 강하게 하니, 당황스럽다는 듯 뭔가 답도 못하고 가만히 저를 보기만 했었죠. 그 모습이 오히려 그땐, 어이가 없었달까? 뭔가 더 적극적인 변명이라도 하든, 미안한 건지 당당한 건지 말 한마디라도 시원하게 해줬으면 했거든요.

근데 그렇게 입 닫고 가만히 있으니, 저 혼자 이 사이에서 애걸복걸하나 싶었습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J와 자연스레 연락도, 만남도 끊겼어요. 아마 지금쯤이면 그토록 바라던 해외생활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미 상황이 이렇게까지 왔는데 전 지금 와서 뭐가 그리 켕긴답시고 혼자 멍 때리고 있는 걸까요?


'홀로 앉아 가만히, 하루 중 갑자기,

되뇝니다, 무심해질 만하면

익숙할 만하면, 그새 또 웁니다


그립지만, 떠오르지만,

이미 다 엎질러진 일인 걸 아는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또 한 번, 다시 떠오른 그대가

미칠 듯이, 잊고 싶었던 그대가

끝내 못 잊을 사람임을 알고, 또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이제 알아도,

놓을 수조차 없죠.'


흐르는 강물을 보며 지난 일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그럴듯한 구절들은 떠오르네요.

이미 연락이 끊겼지만, 마음이라도 마지막으로 전해도 괜찮을지 싶어 메시지를 보낼지 망설입니다.

기약도 회신도 없을 짓인 걸 뻔히 다 느끼면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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