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 뭔가 한 가지에 꽂혀서 '이것만큼은 이때 아니면 평생 못한다'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죠.
다만 그 생각이 아직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엔 경험도 부족하고 시선도 좁은 학생 시절에 쉬이 꽂혀버리면 다소 곤란하겠죠. 저 역시도 고등학생 시절 무모하게, 그저 외국 장르소설들이나 깨나 읽으면서 '소설가가 되어 돈 벌고 사는 삶도 얼마나 멋지고 좋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어요. 나중엔 진짜 그 생각 때문에 대학까지 섣불리 성적에 맞춰 일단 들어간 뒤에 알아서 해보자,라는 식으로 들어갔어요. 또 어디서 나름 들은 건 있어서 어차피 작가들 대부분이 대기만성형이다, 차근차근, 무슨 자신감에서 나온 생각인지 지금도 좀 의아하네요.
그때의 막연한 판단과 실행으로 꽤 오래 고생을 했고, 그렇다 보니 20대 중반 어느 시점에 이르러 보니 제가 외면해 온 제 현실이 그제야 무겁게 절 짓누르는 것 같더라고요. 낱낱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어느 순간 뒤돌아 보니 딱 온갖 미디어에서 소위 '흙수저' '진짜 몸뚱이 말고는 뭐 하나 있는 게 없는 놈' 등으로 묘사하는 상황과 얼추 크게 다를 것 없는 상태였더군요.
뭐, 어쩌겠어요. 그때부터는 진짜 정신 차리자, 더 떨어지면 물러설 데도 없다, 어떻게 더 생존을 하냐 마냐 하는 와중에 글쓰기 같은 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지워졌어요. 그나마 당장 가진 건 멀쩡한 허우대 하나이니, 정면돌파 말고는 답이 없더라고요. 본래부터 주변에 뭔가 알려주고 이끌어 줄 사람이나 연줄 같은 건 있지도 않았으니 더더욱 몸으로 이런 사회, 저런 세상 다 부딪혀봤어요. 그렇게 이리저리 치여 가며 맛이 씁쓸한지 달달한지 배워가니, 어찌어찌 결론적으론 제대로 배우고 깨닫되 시간도 노력도 남들보다 배로 들었죠.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제가 본능적으로 몇 가지 반드시 버릇처럼 놓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챙겼던 것들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금연이었고, 다른 하나가 영어를 간단한 단어나 문장이라도 틈틈이 챙겨 확인하던 거였어요. 영어 등의 외국어나 외국 문화 자체에 본래 꾸준한 관심이 있기도 했었고, 뭔가 그런 데라도 몰입하다 보면 진짜 이 어지럽고 비참한 현실에서 그나마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꿈이나 상상 같은 거라도 할 수 있었달까요? 외국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며 더 배우고, 직접 현지에 가서 그 사회의 문물을 접하는, 혹은 기회가 더 이어진다면 더 오래 살 수도 있는 장場을 열어본다거나.
그 와중에도 한국 사회 안에서 뭔가 제대로 자리 잡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물 건너 도망칠 궁리나 했던 거냐고 반문하신다면,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럴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었죠, 당시엔. 지금은 나름 겪어볼 대로 겪어 나름 무덤덤하나 그땐 맘속에서 늘 울화가 치솟듯 했거든요. 내가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건 인정하겠지만, 그게 이 정도의 반동으로 돌아올 만큼 내가 잘못이라도 한 건가, 나도 내 선에선 할 만큼 하는 중인데, 해도 해도 너무하네, 딱 그 정도 생각 말고는 더 나아갈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렇게 20대를 쭉 보내고, 서른 초입이 되니 뭔가 조금씩 진짜 마음도 상황도 자연스럽게 잠잠해지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그래, 그렇게 몸으로라도 부대껴가며 나섰더니 이제라도 좀 뭔가 알긴 알겠네, 이런 마음도 들면서요. 그러다 재작년 겨울 즘, 2023년 겨울 무렵 우연한 기회로 접한 소식이 있었죠. 캐나다의 워킹홀리데이 자격조건이 특히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바뀌었다고 말이죠. 나이도 30세에서 35세로, 비자 취득 시 체류 가능 기간도 1년에서 2년으로.
이전부터도 하도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대개는 서른 살 즈음으로 제약이 돼 있으니 전 이미 스물아홉 즈음에 이미 포기했었거든요. 돈도 쥐뿔 없는데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이제 내 생에 어지간해선 물 건너 살 기회 같은 건 없겠구나, 꿈 깨자. 제가 원래 그래요. 애당초 글러먹었다 싶은 일이라면 기대감조차 안 가지려 아예 옵션에서 지워버리거든요.
그러다, 이젠 그냥 반쯤 체념하며 하루하루 앞만 보듯 살던 와중, 일반인이 별다른 특수 자격 없이 때만 맞으면 가장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는 비자인 워킹홀리데이의 자격 변경에 관한 소식을 듣고 나니 뭔가 더 마음이 가는 거 있죠? 거기다 마침 북미 대륙이라니, 딱 영어권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때 처음 '이것만큼은 이때 아니면 평생 못한다, it's literally now or never'라는 느낌이 이렇구나 깨닫기도 했어요. 뭔가 더 재보고 할 게 없이 일단 신청이라도 해보자 싶어, 캐나다 출입국 관련 부서 측에 직접 지원서까지 제출했어요.
'I gotta go, please, I understand it could be worse, possibly, but it's once in my lifetime.' 이게 정말 딱 제 심정이었어요. 제 삶에선 더 이상 고려해 볼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지냈는데, 그게 어쩌면 될 수도 있게 바뀌었대요. 저뿐 아니라 누군들 마음이 혹하지 않을까요? 저는 단지 의도치 않게 모든 상황들이, 마침 새로운 도전을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을 만했기에 더더욱 거칠 것 없었던 거죠.
그렇게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럽게, 또는 시의적절하게 제 새로운 인생의 여정이 열렸던 작년이었죠.
몇 년씩 해외에 체류하는 일도 잦은 이 시대에 고작 백일쯤의 경험이 얼마나 흥미롭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귀국 후 반년 정도 지난 지금이라면 보다 차분하게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인생 첫 서방세계로의 여정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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