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거고 난 졌다.
영국 왕실의 미스테리한 사나이로 불렸던 George Rex가 건설한 도시 나이스나. 이곳은 요트로 대표되는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이자 은퇴자들이 모이는 거주 구역으로 유명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이다. 나이스나(Knysna)라는 이름은 코이(Khoe) 부족의 언어로 Straight Down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시원하게 뻗은 나이스나 강 하구의 두 절벽, 나이스나 헤드를 일컫는다.
나이스나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더반에서 플레텐버그로 이어지는 장거리 운전과 역동적인 액티비티(튜빙, 스노클링)로 인해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평화로운 나이스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식처였다. 그래서 나이스나에서의 여행은 정적인 활동을 위주로 계획했다. 물론 나이스나에서도 요트나 돌핀워칭 같은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나이스나 헤드 뷰포인트에서 경치 감상하기.>
"나이스나 헤드"란 나이스나강 하구 길목을 양 옆으로 지키고 있는 절벽을 가리킨다. 이 두 절벽이 만드는 좁은 물길로 인해 육지 쪽으로는 넓고 고요한 라군이 생겼고, 근처 바다에는 담수와 해수가 섞여 바닷물의 색깔이 달리 보이는 구간이 생겼다. 나이스나 뷰포인트 근처에 카페가 있다. 라떼 한 잔과 함께 감상한다면 그 이상 캄 다운(Calm Down)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커피 주문 대기열이 길었다.
<굴 먹기. 초장에 찍어 먹기.>
"나이스나 워터프런트"에 34 Degree South(남위 34도)라는 복합 레스토랑이 있다. 회전 스시, 생굴 등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남아공 내륙에 사는 우리는 해산물을 본지가 워낙 오래되어 생굴을 먹으러 갔는데, 사실 나는 한국에서는 생굴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 '회는 초장 맛'으로만 먹는 초딩 입맛의 흔한 애어른... 굴이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초장을 먹고 싶었다. 밀봉한 초장을 주섬주섬 꺼내 찹찹 찍어먹고 있는 우리 모습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토마토소스로 오해받았다.
아무리 너희가 행복해도, 고추장 맛을 모르는 너희는 불행해!
<산책하고 또 산책하기.>
34 Degree South에서 식사를 마치고 식당과 연결된 기념품점을 구경했다. 나이스나를 상징하는 문구와 그림으로 티셔츠, 점퍼, 패딩 등 참 많은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나는 남색 티셔츠를 하나 골랐다. 나이스나를 상징하는 34 Degree South가 주황색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굉장히 희귀한 기념 티셔츠를 산 기분이 들어 좋았다. 너무 희귀해서 특별한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간단히 쇼핑을 마치고서 워터프런트부터 테센아일랜드까지를 산책했다. 테센아일랜드는 19세기 나이스나에 정착한 테센 일가가 세운 거주지이다. 노르웨이 사람인 이들은 뉴질랜드를 향하던 중 우연히 나이스나에 오게 되었는데 아름다움에 매료된 탓인지 그대로 뿌리를 내려버렸다고 한다. 넓디넓은 나이스나 라군(석호)에 떠있는 작은 섬, 테센아일랜드는 이제 근사한 거주지와 쇼핑 구역으로 꾸며져 있다. 매우 작은 버전의 여의도라고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조금은 낡은 듯 하지만 잘 정돈된 거리였다. 흑인은 거의 보이지 않아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백인 커뮤니티의 지역 마켓 구경하기.>
우리는 지역 커뮤니티에서 열리는 작은 시장을 좋아해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간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지역 시장에서는 그곳의 문화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다. 테센아일랜드를 산책하다가 Sunday Market이라는 광고를 보았다. 특정 기간 중에서도 일요일에만 여는 마켓이었는데 마침 우리가 머무는 기간에 일요일이 걸쳐 있어 찾아갔다. 가보니... 이곳 역시 순전히 백인들의 커뮤니티였다. 이 마켓은 생계보다는 취미 또는 문화 생활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느낌이었다. 잘 정돈되었고 깨끗했고 비쌌다. 역시 흑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법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없앴을지 몰라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인종 분리의 벽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달콤한 꿈을 꾸기>
나이스나의 거리를 산책하고 있자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평화롭고 여유롭고 깨끗하다. 왜 은퇴자들이 이곳에 모이는지 알 것 같았다. 애당초에 영국 왕실에서 태어난 영국 왕실 금수저, George Rex가 찜한 곳이다.
백인들이 정착한 데는 이유가 있어. (너무 좋아!)
커뮤니티 마켓에서 워터프런트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니 부러워졌다. 나중에 우리도 이런 곳에 정착하면 어떨까 하는 행복한 꿈을 꾸어 보았다. 테센아일랜드의 부동산 가격을 보기 전까지만.
백인들이 정착한 데는 이유가 있어. (비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