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에 대해서 사람들이 자주 하는 오해 중의 하나는 백인이 처음 정착한 지역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케이프타운이 아니라 바로 이곳 플레텐버그였다. 얘기가 나온 김에 역사 얘기를 쬐끔 해보자면... 케이프타운 테이블 베이에 얀 반 뤼빅(Jan van Riebeek)이 처음 도착한 때는 1652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20년 전에 포르투갈의 배 하나가 플레텐버그 근처에서 침몰한 것이 백인 정착의 시작이었다. 생존 선원들이 난파선으로부터 나무를 뜯어 새로운 배를 만드는 8개월 동안 머물렀던 것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정착보다는 체류에 가깝겠다. 체류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백인이 처음 살았던 곳은 플레텐버그인 것이다. 이후 18세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이곳을 원목 생산지로서 주목했고 본격적인 정착이 시작됐다. 이때 만들어진 원목 수출 목적의 조선소가 유적지로 남아있다.
지금 이곳은 리조트 타운으로, 또 풍부한 놀이거리를 갖춘 휴가 목적지로 각광 받고 있다. 메인 해변가에서는 서핑을 즐길 수 있고, 조금 멀리 로버그(Robberg)까지 가면 물개 스노클링을, 좀 더 멀리 나가면 돌고래와 고래를 볼 수 있는 Deep Ocean Safari 투어도 할 수 있다. 특히 로버그는 하이킹, 버딩(새 관찰), 기원전 동굴 유적지 체험 같은 활동도 가능하니 조금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나는 동물 덕후로서 무조건 물개 스노클링을 해야만 했다. 로버그에는 물개 곶(Cape Seal)이라고 불릴 만큼 물개가 많은 절벽 해안이 있다. 여기서 오리발을 끼고 물개들이랑 같이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사전 예약을 하고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해변에 모여서 보트에 몸을 실었다.
보트에 타고 로버그 절벽 해안으로 다가가니 물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녀석들도 있었고, 대부분은 물에서 놀고 있었다. 먹이를 찾는 게 아니라 진짜 놀고 있었다. 사람이 탄 보트가 다가가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또 왔냐.." 하는 느낌.
여행 사이트에서 보았던 즐거운 장면들을 떠올리며 물에 들어갔다. 연안이었지만 물은 발이 닿지 않을 만큼 깊었고, 나는 곧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보트에서 노란 부표를 하나 받았는데 안심하고 놀기엔 부력이 약했다. 그리고 점점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물도 무섭고 놀자고 달려드는 물개도 무서웠다. 저 초점 없이 커다란 까-만 눈이 나를 가만히 보다가 물을 뿌려대며 쏙 들어갈 때는 물개와 물의 공포가 합쳐져 더 무서웠다.
프로그램 시간은 또 왜이리 긴 건지... 치치캄마에서의 튜빙 때처럼 물개 스노클링도 빨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지쳐서 보트에 올라올 때까지 떠나지 않았고 먼저 올라온 사람들은 배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웃으며 출발했다가 사색이 되어 돌아오는 혜자 투어였다.
<투어 정보>
ㅇ가격 : 800란드(약 65,000원)
ㅇ주의사항
- 생각보다 물이 깊고 파도가 높아서 공포스러움.
- 구명조끼를 벗고 들어가서 공포스러움.
- 물개가 놀자고 달려들어서 공포스러움.
- 오리발은 아프더라도 꽉 끼는 것으로, 본인 발보다 한치수 작은 것으로 받아갈 것.
(일행 중 한 명은 오리발이 벗겨져 배에만 있었음.)
- 이것도 혜자의 나라.. 모두가 지쳐야 끝남.
- 끝나고 샤워할 때는 비누칠/샴푸 하면 안 됨.
(우리는 모르고 해버렸는데 다행히 중국인이냐고 오해함)
ㅇ그래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