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아공은 통일된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당시 크게 네 개의 정치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영국 식민지였던 케이프콜로니와 나탈콜로니, 네덜란드 보어인의 독립국이었던 트란스발공화국, 오렌지자유국이 주인공이었다. 트란스발과 오렌지 자유국 두 나라는 영국보다 먼저 남아공을 개척(?)한 네덜란드계 보어인들이 세운 공화국이었다. 이들은 19세기 중반에 영국에게 케이프타운을 빼앗기고 쫓겨나면서 내륙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Groot Trek, 위대한 여정 으로 불림>. 이 보어인들이 남아공 내륙지방으로 이동하면서 또 트란스발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으로 나뉘었는데, 둘 다 국제 사회의 승인을 받았던 어엿한 공화국이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인들이 새롭게 일군 이 두 내륙 국가에서 다이아몬드와 금이 넘쳐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케이프타운에 이어 보어인들의 위치선정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는 영국이 다시 한번 보어인들에게 간섭하는 계기가 되었고 보어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보어전쟁이 일어나 보어인들은 완전히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비록 전쟁을 이긴 영국이었지만 보어인들과 치룬 수많은 전투에서 꽤나 고전했었기에, 종전 협정을 할 때는 보어인에게 자치보장 같은 당근을 쥐어주며 불만을 잠재웠다. 그리고 독일, 러시아 등 유럽 정치에 신경쓸 일이 더 많았던 영국은 이쯤에서 남아프리카 상황을 안정화 시키기를 바랐기에 보어인을 더욱 포용하기 위해 자치보장에서 더 나아가 연합안을 밀어부친다.
연합 구성 제의를 받은 보어인들은 종전 협정으로부터 이미 보장 받은 자치권을 빼앗아가려는 수작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므로 연합의 수도가 어디로 결정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연합 수도를 영국령이었던 케이프타운으로 정하는 것은 이들의 걱정을 합리적인 의심으로 바꾸어놓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영국이 원해서 시작한 연합안이었고, 자신들의 자치권을 잃을 우려도 있었기에 보어인들은 강경했다.
그래서 결국 수도를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남아공에 세 개의 수도가 생겨나게 된 것다. 수도의 기능을 행정, 입법, 사법으로 나누어 행정수도 프레토리아, 입법수도 케이프타운, 사법수도 블룸폰테인을 정했다. 민주주의의 삼권분립 개념이 아니었다면 이 연합은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분이 아슬아슬하게 맞아 떨어진 느낌이다. 영국령 나탈 콜로니의 수도 피터마리츠버그는 금전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사법수도에 만족하지 못한 블룸폰테인도 보상을 받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원주민 흑인들(줄루족, 수투족, 코사족 등)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 후, 연합국가를 만들어낸 보어인과 영국인은 흑인을 경계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점차 동일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남아공 백인으로 진화한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요하네스버그는 그럼 무엇일까? 요하네스버그는 보어계 트란스발 공화국에 속했던 도시로, 금광이 발견되어 유명해진 곳이다. 남아프리카 골드러시라는 화려한 역사의 주인공답게 지금은 남아공 경제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행정수도 프레토리아가 속한 하우텡(Gauteng)주의 주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