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바람은 파도를 만들고

by 모래

홀로 1박 2일 배낭여행으로 떠난 강릉.


분명 맑았던 날씨는 흐려지고,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왜 내가 여행 오는 날에 날씨가 좋지 않은 건지, 고작 이틀인데!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은 평소 나를 지배하던 귀찮음을 이기고 근처 바닷가로 향하게 만들었다.


너무 늦은 거 아닐까, 발길을 재촉하며 도착한 강릉의 밤바다는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도통 구분되지가 않는다. 파도가 밀려든다. 새까만 하늘과 분간되지 않던 바다를 알아챌 수 있게 하는 건 새하얀 포말 덕분이다.


쏴아아아- 자신이 부서질 때마다 밤하늘 속에 울리는 파도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우리가, 바로, 여기, 있다고.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파도가 되어 이내 하얀 거품으로 부서지는 바다의 마음을 가늠해 보려다 나의 오만함을 깨닫곤 얼굴이 벌게진다.


부서진 포말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다시 바다가 된다. 이윽고 다시 한번 물결에 올라 자신을 힘껏 던진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파도는 높아지고 이들의 목소리를 모래사장 위를 가득 채운다.


바람은 그렇게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다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간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긴 할까. 쉽게, 자주 무력해졌다. 유난히 바람이 거세던 겨울날이었다.


하지만 이런 날이면 바다에는 더 크고 많은 파도들이 만들어질 거다. 잔물결은 커다란 파도가 되고, 파도는 포말이 되어 하얗게 부서지기도 하겠지. 하지만 부서지고, 또 부서지더라도 바다는 계속해서 파도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게 바다의 일이니까.


그러니 지치지 말고, 계속해서 부서져야지. 목소리를 내야지. 서로가 쥔 두 손 위 불빛을 등대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리고 우리는 외칠 것이다.


우리가, 바로, 여기, 있다고.


*이 글의 제목은 김연수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제목을 차용하였습니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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